시를♠읽고 -수필

야트막한 사랑 / 강형철 -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1. 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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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사랑


강형철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언덕 위의 사랑 아니라
태산준령 고매한 사랑 아니라
갸우듬한 어깨 서로의 키를 재며
경계도 없이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웃음으로 넉넉한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사랑 아니라
개운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랑 아니라
야트막한 산등성이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
온 마음을 휘감되 아무것도 휘감은 적 없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이제 마를대로 마른 뼈
그 옆에 갸우뚱 고개를 들고 선 참나리
꿀 좀 핥을까 기웃대는 일벌
한오큼 얻은 꿀로 얼굴 한번 훔치고
하늘로 날아가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가슴이 뛸 만큼 다 뛰어서
짱뚱어 한 마리 등허리도 넘기 힘들어
개펄로 에돌아
서해 긴 포구를 잦아드는 밀물
마침내 한 바다를 이루는

 

 


《도선장 불빛아래 서 있다》창비
-조명숙 엮음『하늘연인』(열음사, 2006)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

 

 


  이 세상 완전한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장대비 치는 사랑과 눈보라치는 격정적인 사랑이라고 해도 꽃에서 한 움큼의 꿀을 얻어 가면 그만인 꿀벌처럼 그것이 순수함에서 시작되었든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든 지나친 집착이나 소유개념이 돼버리면 이상적인 사랑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벌이 꽃에서 한 움큼의 꿀을 훔치는 순간 꽃에서 속박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식지 않는 사랑을 하려면은, 변하지 않는 '야트막한 사랑'을 하려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인가 서둘려 이루려할 욕망을 갖지 않은 채 인내하는 기다림의 미학도 배워볼 일이다.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처럼 온 마음을 휘감되 아무 것도 휘감은 것 같지 않는 순수한 내면의 아름다움도 키워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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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사랑


차창룡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거주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 아름다워, 야윈 상록수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너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으니,


일촉즉발의 사랑이어라, 세상은 온통 양귀비의 향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신과 나는 벼랑에서 떨어졌고,
세상을 우리를 받쳐 주지 않았다. 피가 튀는 사랑이여,
계곡은 태양이 끓는 용광로, 사랑은 그래도 녹지 않았구나.


버릇처럼 벼랑 위로 돌아왔지만, 벼랑이란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법,
평생 벼랑에서 살 수는 없어, 당신은 내 마음을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이의 힘은 붙잡을수록 세는 법인지.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끝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마음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는 것들아,
벼랑은 암시랑토 않다는 표정으로 다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시집『벼랑 위의 사랑』(민음사, 2010)

 

 


  꿈꾸는 듯한 달콤한 사랑을 기대하는 소박한 시 야트막한 사랑을 읽다가 벼랑 위의 사랑을 읽으니 첫 구절부터 위태위태하다. 모든 사랑이 벼랑 위에서 시작이 된다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불쏘시개처럼 격정적인 사랑은 오래 못 간다고 한다. 헤어지기 위해 시작하는 사랑은 없지만 이 시는 처음부터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다. 마음은 인연 따라 왔다가 흐르는 물처럼 아무 것도 싣지 않고 가는 것이다. 


  벼랑 위의 사랑, 세속 남녀의 사랑을 두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보듬고 안아주는 평범한 사랑을 하는 선남선녀에겐 지고지순한 사랑은 없다.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한데 고여있을 때만 가능한 것. 한 사람의 마음이 떠나는 순간 사랑은 끝나는 것이다. 가여운 인간의 사랑을 두고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할 필요도 없다. 사랑을 잃었다고 해서 너무 슬퍼한 것도 분노할 것도 없다. 사랑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자동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