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중앙병원
박준
태백중앙병원의 환자들은 더 아프게 죽는다
아버지는 죽어서 밤이 되었을 것이다
자정은,
선탄(選炭)작업을 마친 둘째형이 돌아오던 시간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드러내보이던 형의 누런 이빨
같은 별들이 환히 켜지던 시간이다
-웹진『시인광장』(2010년 8월호)
짧지만 이 시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애환과 진규폐환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에서 <태백중앙병원> 환자들이 더 아프게 죽는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진폐환자들의 죽음을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도 진폐증으로 인해 사망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보통 직장인의 일과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을 하지만 광산촌은 통상 3교대로 24시간 돌아간다.
일반적인 직장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근무를 '갑반'이라고 하고, 저녁 무렵에 출근하여 밤 자정쯤에 퇴근하는 것을 '을반', 한밤 자정에 출근하여 아침에 퇴근하는 것을 '병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6섯 줄로 된 이 시는 생략과 압축이 많아 탄광촌과 광부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있지 않으면 <태백중앙병원>을 다 들여다보기 어렵다. 시에서는 진폐증이란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탄광이라는 광부들의 특수한 직업과 채탄을 위한 작업장인 막장에 대한 여건과 채탄과정에서 발생되는 탄먼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도 하다.
강원도 태백 금천골이라는 곳에 우리 나라 최초로 탄광이 발견되었고 그때가 1936년이라고 한다 <태백중앙병원>은 이곳 탄광에 달린 조그마한 의무실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병원이야 어느 곳이나 다 다치고 병든 사람들이 치료하고 입원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태백중앙병원>은 여느 병원과는 좀 다르다. 바로 우리 나라 최초의 산재병원이며 가장 오래된 산재병원인 이곳에는 많은 '진규폐환자' 들이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진규폐증이란 진폐와 규폐를 말하는 것으로 탄가루와 돌가루에 의해 폐가 굳어지면서 산소공급이 줄어 기관지나 폐결핵 등 합병증을 발생시켜 몸을 망가지게 하는 병이다. 이 병은 하루 이틀에 생기는 병도 아니고 딱히 치료방법도 없다고 한다. 수십 만개의 허파꽈리로 이루어진 폐가 탄먼지로 인해 굳어가므로 채탄 과정에서 이 탄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업하는 광부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병이기도 하다.
한때는 산업전사로 치켜세워 불려지며 우리 나라 생활 에너지의 일익을 담당하던 탄광부들이 <태백중앙병원>에 직업병으로 입원을 하고 있다. 석탄을 캐는 광부로 바다보다 더 깊이 들어간 땅 속에서 석탄을 캐다가 진폐증에 걸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며 십 년 넘게 장기간 입원하는 진폐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몇 십 년 일한 대가로 폐가 굳어버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태백중앙병원>은 탄광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눈물과 애환과 원망이 서린 곳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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