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국수 / 이재무 - 부부론 / 공광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1. 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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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이재무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꿇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시집『저녁 6시』(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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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론


공광규

 


오늘은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된장을 끓이고 오래된 반찬을 내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결혼은 삼겹살을 굽는 것이네
타지 않게 골고루 잘 익혀야 하는 것이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불꽃을 조절하고
알맞게 익도록 방심하지 않는 것이네


결혼은 된장국을 끓이는 것이네
알맞은 양을 물에 풀고
양념을 넣고 자꾸자꾸 간을 보는 것이네
된장과 양념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네
그걸 몰라서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된장을 끓이고 오래된 반찬을 내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계간『시와 정신』(2008년 가을호)

 

 

 

 

  남남이 만나서 사는데 부부싸움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60대 부부가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리포터가 정말이냐고 재차 묻자 순박한 얼굴 표정으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그건 아니고 금방 풀어진다고 한다. 그럼 싸우면 누가 먼저 사과를 하느냐고 하니까 남편이 나서서 남자니까 내가 먼저 미안해 하며 사과를 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그렇게 하면 다 풀어지냐고 하니까 아내도 피식 웃으며 그렇다고 한다. 부부싸움이 이렇게 싱겁게 끝난다면 화가 난 아내가 집 나갈 일도 친정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제목은 다르지만 두 편의 시는 부부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무엇이 발단이 되어 싸움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고 아내가 집을 나간 걸로 봐서는 작은 싸움은 아닌 것 같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로 애들 교육 문제로 생각이 다르거나 의견이 맞지 않아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고 통계에서 보듯이 경제적인 이유로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다. 그러다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는 바람에 작게 시작한 싸움이 언성을 높이며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내 집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을 가지고 어이없게 심하게 싸우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싸움의 이유야 어쨌든 아내가 화가 잔뜩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여자들은 보통 집을 나가면 친구 집 아니면 친정으로 간다고 한다. 위의 시에서는 집 나간 아내의 행방을 알고 있어서 저으기 안심이 되어서 그런지 국수를 삶으면서 아내 생각을 살갑게 하기도 하고 싸움의 이유야 어쨌든 그저 화가 풀어져 일찍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그런데 밑에 시는 집 나갈 정도의 싸움을 한 것도 아닌데 집을 나가서 끼니때가 됐는데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서툰 솜씨로 애들 밥을 챙기면서도 화가 잔뜩 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전화도 받지 않고 행방도 모르는 아내를 두고 밥을 먹으려니 밥맛이 날 리도 없겠다. 아내는 어디로 발검음을 한 것일까. 행방을 모르는 것이 겉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못내 답답해하는 속내가 드러나 보인다.


  아내가 집을 나가면 소소한 일상사가 그렇듯이 먹는 것이 제일 걱정이기는 하다. 화가 나서 집을 나간 아내가 어디 여행이나 외출 할 때처럼 밥상을 차려놓거나 밑반찬을 만들어놓고 갈 리가 만무하다. 꼼짝없이 무어라도 먹어야하는데 영 마땅치가 않다. 아이라도 없다면 굶기라도 하겠는데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자장면을 시켜먹거나 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 한다. 그저 아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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