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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골 3 -백석 / 김명원 - 크리스마스의 백석 / 박정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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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골 3
  - 백석


  김명원

 

 

  왜 그대의 당나귀는 응앙응앙 울었을까요? 하얀 눈이 푹푹 내리고
있는데, 기꺼이 묻히고 싶은 하얀 눈보다 더 하얀 나타샤는 푹푹푹 내
몸에 내려 쌓이는데, 우리의 찬란한 타나토스 3막, 주검을 데리고 가
줄 하얀 눈보다 더 하얀 나타샤보다 더더 흰 당나귀는 왜 하필 응앙응
앙 울었을까요? 가령 응아응아, 라고 하면 우리 시적 교감이 덜 아팠
을까요. 아니 응애응애, 라고 하면 그대 사랑이 한결 초라해졌을까
요? 어디에 그대의 눈물을, 우는 어깨를, 떨고 있는 소주잔을, 눈그림
자에 흔들리는 시어를 묻고 싶었던 것인가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던 건가요? 하얀 눈은 그치
지 않고 푹푹 오고, 푹푹푹 오는 하얀 눈보다 더 하얀 나타샤는, 당신
을 굳이 사랑한다고 믿게 한 나타샤는 러시아풍 눈 덕분에, 하얀 눈보
다 더 하얀 나타샤보다 더더 흰 당나귀 신묘한 울음소리 덕분에 한마
디 대사가 주어지지 않았어도 주인공으로, 얼마나 풍성하게 눈부셔지
고 기품을 갖추게 되었는지요… 신비한 눈의 여왕으로 등극한 오만이
결국 내 무릎을 접게 하였는지요… 그대는 나타샤만 바라보지요. 나
타샤역을 맡은 말 많은 나는 그대에겐 없는 존재이지요… 나는 그대
를 이렇게 바라고 있는데, 기다리는 저 당나귀 등 위로 기꺼이 올라타
고 있는데… 죽을힘을 다하여 죽으려 하고 있는데요.


  지금 창밖에 그대가 퍼붓는 눈이 푹푹 내려 온통 눈벌집 세상입니다.
  지금 창밖으로는 그대가 애절해한 나타샤가 당나귀를 타고 내게 절뚝
이며 옵니다.
  연거푸 와서 내 목을 조르고 내 슬픔을 터뜨립니다. 내 순서라고 속
삭입니다.

  하얀 피투성이가 된 무대 위로 퍼붓던 인조 눈발이 몇 송이더 흩날
리고
  내 언어들은 기어이 끊어지고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어찌할까요, 지금 막을 내릴까요?

 

 

 

-계간『문학청춘』(2011, 겨울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시 100選』(아인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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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


  박정원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내를 버린 남자가 커피 볶는 집에서 백석을 읽
는다


  소나무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드센 바람도 좋아라 유리창 밖에서 응앙
응앙 울고


  가는 눈이 간간이 뿌려지는 전봇대에 앉아 갓볶은 커피 향을 기웃거리
는 직박구리 한 마리
 

  강 건너 저편엔 천국행열차가 산그림자를 끌어내려 굼벵이처럼 지나
가고


  서서히 지워지는 마을들
  하나 둘씩 불이 켜지는 만주벌판의 집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세상한테 지는 길이라네 내가 좋아서 버리는
거라네

 
  눈도 푹푹 나리지 않는데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계간『문학청춘』 (2010년 겨울호)
-월간『시문학』 (201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