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서쪽으로 가면 누가 있는지 / 김용택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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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가면 누가 있는지


김용택

 

 

내 날개에 떨어진 햇살을 보면
고향에 장다리꽃이 핀지 알지요.
봄바람이 살랑대면
장다리 꽃잎 네 장이
두 마리 나비가 되어
강을 건너는 꿈을 꾼답니다.
봄이 되면 맨발이
흙 속에 묻히는 마을,
속 날개로 바람을 싣고 날았답니다.
저 하늘 어느 별에선가
강물에 날개를 적시는 어머니의 날개 소리를 들었답니다.
보고 싶어요. 어머니,
내 날개를 쓰다듬어 주는 아버지의 왼쪽 손가락 상처들을 만지고 싶어요.
내 이웃에 옹이 진 살구나무 살구꽃이 피었답니다.
살구나무 꽃그늘 내린 마루 끝에 앉아 환하게 웃는 여자아이를 보고 싶어요.
그 아이에게 노란 살구를 주고 싶었지요. 그 아이가
내 날개를 잡으러 다가오는 떨리는 눈빛을 보고 싶답니다.
보고 싶고, 그립고, 풀들이 돋는 마당 가 장다리 꽃밭에 날고 싶어서
그리운 골목길을 지나 바람 부는 풀밭 위를 날고 싶어서
이렇게 날개를 접고 꽃을 들여다보고
속 날개로는 이렇게 바람을 부른답니다.
접었다 폈다 내 날개는 내 마음입니다.
나의 날개로 은하수 맑은 물을 닦아
날아가는 내 모습을 비추었답니다.
때로 나는 지상에 매인 끝을 자르고 싶답니다.
가문 땅에 풀들이 돋아나고
폭우 속으로 어린 새들이 날아가고
폈다가 도로 접는 불쌍한 날개들
막 돋아난 쑥 잎 끝에 태어난 이슬방울
지구를 떠도는 슬픈 눈동자, 나는 나비랍니다.
내 고향은
봄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강물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봄바람 끝에는 누가 사는지,
서쪽으로 날아가면 내 마음을 풀어다가 그려 놓은
환한 달이 있을지,
내 날개가 된 장다리꽃,
지붕을 넘어 날아와
마루 끝 내 곁에 처음 내려앉던 행복한 그
꽃을
따라온
나비랍니다.

 

 

 

-월간『현대시학』(201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