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수풀로 이파리로 / 이제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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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로 이파리로


이제니
 


어젯밤에는 사시가 되는 꿈을 꾸었다
너를 보는 내 눈동자가 자꾸만 도망갔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한 기억에서 한 기억으로


너는 길 끝에 서 있었다
영원히 도착할 수 없으리라는 암시는
내 눈동자가 너를 지나치기 전의 일이었다


이파리는 건너뛴다
수풀은 끊이지 않는다


환각을 따라 망각하듯이
망각을 하듯 환각을 따라
꿈인 것을 아는 꿈속 꿈처럼


미안하구나 내 눈동자가 옳았다
나는 너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어
네 곁을 비껴가던 무수한 이파리들


이파리는 다시 건너뛴다
행운에서 불운으로 건너뛰듯이


수풀로 이파리로 수풀로 이파리로


이 수풀을 건너가면 나는 너를 말할 수 있으리라
오래전 보았던 그것이 바로 내 미래임을 알아차리듯

 
너는 휘파람을 부르듯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너의 목구멍 속에서 솟아오른다


허튼 눈동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해 미워하듯이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수풀로 이파리로 수풀로 이파리로

 


 

-월간『현대시학』(201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