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음녀 1
이연주
팔을 저어 허공을 후벼판다.
온몸으로 벽을 쳐댄다.
퉁, 퉁 , 반응하는 모질은 소리
사방 벽 철근 뒤에 숨어
날짐승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벌건 눈물이 고인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와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버린 세상
철근 뒤어 숨어사는 날짐승이
그 시신을 먹는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구원이라면
시궁창을 저벅거리는 다 떨어진 누더기의 삶은……
아으, 모질은 바람.
----------------------
매음녀 3
소금에 절었고 간장에 절었다
숏타임 오천원,
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번 벌렸다
입에 발린 ××, ×××
죽어 널브러진 영자년 푸르딩딩한 옆구리에도 발길질이다
그렇다, 구제 불능이다
죽여도 목숨값 없는 화냥년이다
멀쩡 몸뚱아리로 뭐 할 게 없어서
그짓이냐고?
어이쿠, 이 아저씨 정말 죽여주시네
--------------------
매음녀 4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 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 대의 석유 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고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켜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
매음녀 6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이 없어 울으셨다.
어머니 숨 거두시며
마음 착한 남자, 등짝 맞대 살으라 이르셨다
나는 부둣가에서
선술집 문짝에 내걸린 초라한 등불 곁에서
매발톱 손톱을 키워 도회지로 흘러왔다
눈 붙이면 꿈속에서 어머니
이 버러지 같은 년아,
아침까지 흑흑 느껴 우신다.
내 심장 차가운 핏톨, 썩은 물 흐르는 소리,
나는 살 속 깊은 데서 손톱을 꺼내
무덤을 더 깊이 판다
하나의 몫을 치르기 위해 삶이 있다면
맨몸으로 던지는 돌 앞에 서서 사는
이 몫의 삶은......
희미한 전등불 꺼질 듯 끄물거린다
------------------------
매음녀 7
이른 새벽이었네. 죽은 애기를 끌어안고 에미는 종종걸음으
로 어둑한 비탈길 내려왔네. 청소차가 방금 지나간 듯 마른 바
람 한 점 휭하니 거리를 쓸고 있었네. 건널목을 건넌 에미는 외
투자락 잡아당겨 가슴팍 핏덩이를 감추며...... 지하도 계단 앞
에서 주변을 훔쳐 둘러보더니 허둥 허둥 또 걸었네. 지친 에미
곁을 느릿느릿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행인들 자꾸만 눈에 밟
혔네. 벌써 날이 밝았어, 벌써 날이 밝았어, 한숨 섞어 중얼거리
던 에미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애비 모르는 죽은 것을 쓰레
기통에 쿡, 쳐박았네. 아아, 나이론 살에 불어 타는 냄새
-시집『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2. 세계사)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녀의 선택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고쳐 쓰다 /유안진 - 선녀와 나무꾼 / 박지웅 (0) | 2013.01.25 |
---|---|
종신 / 이연주 - 독신자 / 고정희 - 終詩 / 박정만 (0) | 2013.01.24 |
이연주 - 가족사진 / 좌판에 누워 / 눈뜬 장님 / 겨울 석양 매음녀 1 등... (0) | 2013.01.24 |
김승희 - 포유의 기억 1 / 포유의 기억 2 (0) | 2013.01.23 |
꽃샘추위 - 송종찬 / 박형진 (0) | 2013.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