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이연주
이마에 재 뿌리고
쑥향과 빈 촛대 들고
들판으로 갔다
나는 밀기울 껍데기로
홑껍데기로
주여,
용서하소서
어두움 실핏줄이 터져
못 이길 두려움에 혼절할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주여, 용납하소서
바람이 죽은 날들을 닦았다
나는 혼신을 다해
촛대 위로 올랐다
불을 그어다오.
-시집『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2.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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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
고정희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 할 저마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모든 영혼은 풀잎 위의 이슬과 같은 것,
풀도 이슬도 우주로 돌아가, 돌아가 -(한xx)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어라 -(강xx)
잊어야 할까 봐
나는 너를 잊어야 할까 봐
아무리 붙잡아도 소용없으니까 -(노xx)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합니까? -(김xx)
오 하느님
죽음은 단숨에 맞이해야 하는데
이슬처럼 단숨에 사라져
푸른 강물에 섞였으면 하는데요 -(나)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고정희 지음『고정희 시전집 세트 2』(또하나의문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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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詩
박정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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