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우리말 여행 11 - 슬픔과 그리움이 물을 만나는 곳 '두물머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27. 09:44
728x90

 
"양평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난다는 뜻의 두물머리로 유명한데 물자를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던 이곳은 이제 추억을 실어 나르고 있다. 한자로는 양수리兩水里를 쓰는데, 양수리라는 지명도 여기서 나온 모양이다. 한때 번창했던 남한강의 최상류 나루터였지만 지금은 돛배 한 척만이 박제처럼 떠다니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략
또 하나의 볼거리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한 그루처럼 모여 있는 정자 목이다. 수령은 400년이며,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우산형의 수관樹冠을 형성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물가에서 가까운 나무는 강 쪽으로만 가지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그리움이 있어야 목적지가 생기는 법인가 보다.

이효재_<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 중에서



두물머리 정자 목 같은 그리움을 가진 이가 많을 터였다. 행장을 꾸려 나선 강변도로, 살짝 올라온 안개가 강을 따라 이어진 것이 산봉우리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양수리의 본래 이름 두물머리로 이르는 길은 참 아름답다. 그동안 족히 열 번은 넘게 보았을 그곳, '이효재'가 정자 목이 그리움으로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알려 주어서 그제야 눈치챘다. 그리고 묻는다. 내 그리움이 향한 곳은 어디인가?

남쪽과 북쪽의 한강이 만난 양수리가 드넓은 것은 닥터박 갤러리 옥상에서 알았다. 그날도 오늘같이 춥고 바람도 제법 있는 겨울 오후였다. 갤러리에는 관람객이 없었다. 지인과 단둘이 작품을 감상하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 쓰인 팻말을 무시하고 올라선 옥상, 그 너머로 바다처럼 한강이 일몰 속에 드러났다. '참 넓구나, 한강'. 두물머리 향수병은 아마 이때 생겼나 보다.

물과 가깝다는 안도감은 참 크다. 물과 헤어짐의 불안감도 참 크다. 그래서 큰물은 그리움의 상징으로 남게 되고 거기에는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황순원_<소나기> 중에서
당신도 '이 바보'라며 조약돌 던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바보' 한마디에 나의 이성이 마비되었고, 내 갈 길을 막고 있는 소녀의 목덜미만큼 하얀 조약돌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소설이 실제보다 더 현실로 다가올 때 나는 그 둘의 무대가 어디인지 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소나기의 무대는 비릿한 갈망이 꿈틀거리는 두물머리 언저리이다. 강과 가까운 조그만 촌마을 말이다. 그리움, 그것은 언제나 물과 닿아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양평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순원 문학관이 생겼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나는 슬픔이 눈물에 잘 녹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슬픔이 눈물에 잘 닦인다는 것을 믿는다.

이윤기_<두물머리> 중에서

이윤기의 두물머리는 좀 색다르다. 번역을 주로 했던 그가 내보인 슬픔은 일상적이며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그의 주장처럼 물을 만나 슬픔도 가신다면 두물머리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달래야 할 그리움과 슬픔을 위해 두물머리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글_정녕
사진_이금선

인용 문헌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 이효재 저, 시드페이퍼, 2012.
<소나기>, 황순원 저, 다림, 1999.
<두물머리>, 이윤기 저, 민음사, 2000.

정녕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문화 기획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