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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 행복하게 사세요 / 건강하게 지내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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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신 나는 방학이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설날 되세요.


요즘엔 어떤 날이나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는 뜻에서 '~한 [시간을 나타내는 말] 되세요'와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되다'의 의미를 따져 보면 바른 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너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라.'와 같은 문장은 '너'가 '훌륭한 의사'가 될 수도 있으니 문제가 없지만, '선생님,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설날 되세요.'와 같은 문장은 '선생님'이 '즐거운 설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 △가 되다'에서는 '□'가 '△'로 바뀔 수 있어야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위와 같이 말하기보다는 '신 나는 방학을 보내길 바랍니다.'라든지 '설날 즐겁게 지내세요.'와 같이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올해도 돈 많이 버시고 행복하세요.
우리 모두 올 한 해 다치지 말고 항상 건강하자.

상대방의 건강이나 행복을 기원할 때 흔히 '행복하세요, 건강하자'와 같은 말을 쓰곤 합니다. 언뜻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행복하다, 건강하다'는 형용사이므로 위에서와 같이 명령형이나 청유형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명령이란 상대방에게 어떤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청유란 상대방에게 어떤 행위를 같이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령형이나 청유형은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에서만 가능하고,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곧 '너는 지금부터 예뻐라.'라든지 '우리 지금부터 예쁘자.'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까닭은 '예쁘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행복하게 사세요, 건강하게 지내자'와 같이 표현해 보세요.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2잔 나오셨습니다.
요금은 모두 합쳐서 5만 원이십니다.

요즘 상점 종업원이나 전화 상담원 등의 말버릇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시-'의 남용입니다. '선생님은 커피를 주문하셨다'나 '어머니는 여전히 아름다우시다'에서 보듯 '-시-'는 본래 서술어주문하다, 아름답다의 주체가 되는 대상선생님, 어머니을 높일 때 쓰는 어미입니다. 그런데 위 예문에서 '나온' 것의 주체는 '아메리카노 2잔'이고, '5만 원인' 것의 주체는 '요금'입니다. 이런 하찮은 사물마저 높이게 되면 정작 높여야 할 것과 차별이 되지 않으니 결국 높임법이 유명무실해지거나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아버지 앞에서 잔뜩 긴장한 며느리가 "저, 아버님 머리님에 티끌님이 붙으셨어요."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티끌이 시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인데, 이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웃었을까요, 화를 냈을까요?

글_ 노시훈
노시훈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박물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전시 문안 작성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을 견학하다 자연스럽게 답사의 매력에 빠져 현재는 테마기행 블로그와 카페 '산 너머 살구'를 운영하며 이야기가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