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재미있는 우리말 - 날은 차차로 밝아 오다가 / 삽시간에 훤하니 밝는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6. 11:56
728x90

 
 
나는 그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준 것에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고맙게 여기다'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전자는 동작을 나타내므로 동사이고, 후자는 상태를 나타내므로 형용사입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는 진행형-는, -고 있다이나 명령형-어라 등으로 쓰일 수 있지만,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는 진행형이나 명령형으로 쓰일 수 없습니다. 즉, '감사하다'가 동사일 때에는 '감사하는, 감사하고 있다, 감사해라'와 같은 꼴로 활용할 수 있지만, 형용사일 때에는 그렇게 활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날은 차차로 차차로 밝아 오다가 삽시간에 아주 훤하니 밝는다. <채만식, 탁류>
이 밤에야 어디를 가랴, 낼 아침 밝는 대로 떠나겠노라 했다······.<김유정, 솥>


초저녁부터 달이 휘영청 밝았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아무리 눈이 밝은 사람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든 거리였지만······. <이문열, 변경>


위 예문 중에서 앞의 두 문장에 쓰인 '밝다'는 동사이고, 뒤의 두 문장에 쓰인 '밝다'는 형용사입니다. '밤이 지나고 환해지며 새날이 오다'라는 뜻으로 쓰인 '밝다'는 동사이기 때문에 '날이 밝는다, 날이 밝고 있다'와 같이 쓰일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빛이 환하다'나 '감각이나 지각 능력이 뛰어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 '밝다'는 형용사이므로 그저 '밝았다, 밝은'과 같은 꼴로만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보내 준 구호 의류는 대부분이 너무 커서 고아들의 몸에는 맞질 않아요. <홍성원, 육이오>
나는 그래도 대제학 김병학은 다른 김씨네보다 아량이 크고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더니 초록은 동색同色이오그려! <박종화, 전야>


날씨가 건조하면 나무가 크지 못한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보통 형용사로만 아는 '크다'도 동사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앞의 두 문장에서는 형용사로 쓰였고, 뒤의 두 문장에서는 동사로 쓰였습니다. 무엇이 보통 정도를 넘은 상태를 나타낼 때는 형용사이지만, 키가 자라거나 어른이 되거나 하는 경우와 관련이 있을 때에는 동사입니다. 그저 형용사로만 쓰이는 '작다'와는 다른 점이지요.
'굳다'도 '단단하거나 강하다'라는 뜻일 때는 형용사이고, '단단하거나 딱딱하게 되다'라는 뜻일 때는 동사랍니다.

 
저놈들이 성문을 열고 싸우러 나온다면 쉽게 무찌르고 성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저렇게 고슴도치처럼 숨어서 굳게 지키고만 있으니 우리가 더 불리하지 않겠습니까요? <유현종, 들불>
그는 사람됨이 굳고 인색해서 남에게 함부로 돈을 빌려 주는 법이 없다.


여자는 일일이 애들의 포즈를 지시해 주었지만 그런 것에 익숙지 않은 애들의 포즈는 딱딱하고 굳기만 했다. <홍성암, 큰물로 가는 큰 고기>
잠깐 고생하고 나오면, 재산은 굳는 거라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염상섭, 취우>


'내가 어떤 낱말을 잘 알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그 낱말의 여러 모를 꿰고 있어야 합니다. 뜻이 여럿이라면 그 각각의 뜻을 두루 익혀 두어야 실제 쓸 일이 있을 때 제대로 쓸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 것처럼 뜻에 따라 품사가 달라지기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저 철자랑 기본 의미 정도만 알고 있으면 상투적인 문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법을 익히고 사전을 늘 곁에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글_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