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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을 낳은 말들① - '잡상인 출입 금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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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의사의 의료 행위를 곧잘 '인술'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뜻에서 붙인 별칭이지요. 그런 의사를 '인술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의사라는 직업에 숭고한 이미지를 덧붙인 것입니다. 교사를 '선생님'이나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 것도 그 직업이나 직업 종사자를 존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 달리 직업을 비꼬는 표현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공공 기관이나 국영 기업체 등을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말에는 편하고, 봉급 많고, 해직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직장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체계를 빗댄 표현이에요.
그런데 당사자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그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억울하게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소수에게서 얻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성원 전체에게 덧씌움으로써 해당 직업 또는 그 직업 종사자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직업 자체를 비하하는 표현도 있어요. 건물 등에 붙어 있는 '잡상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 본 적 있으시죠? 언론 매체도 '잡상인'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하는데요. 상인과 잡상인은 판매 공간을 확보했는지, 일정 수준의 상품을 구비했는지 등에 따라 구별되겠지만 잡이라는 말에 비하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잡상인은 그 직업을 천대하는 말로 들립니다.
봉급쟁이, 점쟁이, 환쟁이도 각각 봉급생활자, 역술가, 미술가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인식되는 편입니다. 본인 스스로를 지칭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기기도 하지만 제삼자가 이런 말을 사용하면 실례가 될 수 있어요.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는 사실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범죄자들이 은어로 사용하는 '짭새'경찰관를 여과 없이 내보내고, 신문 등에서는 세무 공무원을 낮잡아 부르는 '세리'를 쓰기도 합니다. 익명성이 강한 인터넷에서는 군인을 '군바리'로, 건설 노동자를 '노가다'나 '막일꾼'으로, 연예인을 '딴따라'로 표현하는 예가 적지 않은데요. 이들은 특정 직업이나 직업인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 이민을 가면 처음에는 대개 허드렛일부터 시작한다고 해요. 사무실에서 늘 의자에 앉아 일하던 사람은 막상 그런 일을 할 때 창피함을 느끼는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창피하다는 느낌을 별로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직업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