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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말 2 -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 /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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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었던, 마치 그들만 쓰는 은어처럼 여겨지던 전문 용어들이 일반에서도 널리 쓰이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의 유통량과 유통 속도가 급증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에 따라 어려운 한자나 외국어로 된 전문 용어들을 쉬운 말로 바꾸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어 표준화 사업은 시대적 요구라 할 수 있다. 의학 분야에서도 '이개, 수장, 무지, 두부, 흉쇄유돌근'과 같이 설명이 없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도처에서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말들은 대개 일본에서 번역어로 쓰던 말들을 별 생각 없이 들여온 것인데 한번 굳어지고 나니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일제 시대에 강요된 일본식 용어들을 청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의학 분야의 용어 개선 노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학용어위원회를 설치해서 용어 표준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위에 열거한 말들을 '귓바퀴, 손바닥, 엄지손가락, 머리, 목빗근'과 같이 설명이 없이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고쳐 쓰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이렇게 고친 말은 '귓바퀴재건술, 엄지손가락접합술' 등과 같이 그 활용 범위를 확장할 수 있어 그 의의가 더욱 높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말로 고친 용어가 마냥 환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괴사작은창자큰창자염'이나 '거짓막잘록창자염'과 같은 용어는 너무 길고 뜻도 잘 와닿지 않는다 하여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정착이 잘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네크로타이징 엔테로콜라이티스necrotizin
g enterocolitis
', '슈도멤브라노오스 콜라이티스pseudomem
braneous colitis
'라는 용어를 그냥 쓰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길이가 짧은 것도 아닌 이런 외국어를 그대로 쓰자는 것은 국어뿐만 아니라 의학과 의료 제도의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랜 경험을 가진 현장의 의사나 교수에게야 이런 용어가 익숙하고 편하겠지만 당장 의학에 입문한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용어 하나하나는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 넘어야 할 산이 되고 만다. '팜 그래습 리플렉스palm grasp reflex', '스터노클레이도마스토이드 머슬 플랩sternocleidomastoid muscle flap'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어린 학생들을 다그치기보다는 '손바닥쥐기반사', '목빗근판'과 같은 용어로 의학이라는 학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또한 의료 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환자를 비롯한 의료 수요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인 만큼 상호 소통이 가능한 용어를 선택해서 널리 사용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무지'가 엄지손가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을 '무지'하다고 하여 그에게 소통 부재의 책임을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의학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쓰는 일은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출발점이다. 우리말로 된 의학 용어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말이 풍성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외국어와 일본식 한자어로 뒤덮인 의학이라는 학문에 우리말로써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신체의 각 부위를 가리키는 용어는 의학 분야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말이니만큼 학계 전체가, 특히 해부학계가 관심을 두고 용어 개선 작업에 나선다면 국어와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글_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펠로우교수. 성형외과 전문의, 시인이자 수필가.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장, 국어심의위원을 지냈으며 함춘의학상과 인하대학교 연구대상을 받았다. 필수의학용어집을 냈으며, 국제 공인 학술지에 150여 편의 논문을 제1저자나 책임저자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