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새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 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쭉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새의 암장』. 문원사. 1970;『박남수 전집 1』.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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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쓰레기
박남수
천상의 갈매에서
부어 내리시는
부신 별은
다시 하늘로 회수하지 않는
신의 쓰레기.
*
아침이면
비둘기가 하늘에
구
구
구
굴리면서
기억의 모이를
좇고 있다
다스한 신에 몸김을
몸에 녹히면서.
*
신의 몸김을
목에 녹히면서
하루 만큼씩 밀려서 버려지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시인들은 종이 위에 버리면서
오늘도 다시
하늘로 귀소하는 비둘기.
(『신의 쓰레기』. 모음사. 1964;『박남수 전집 1』.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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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나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실리어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신의 쓰레기』. 모음사. 1964;『박남수 전집 1』.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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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박남수
개구리 울음만 들리던 마을에
굵은 빗방울 성큼성큼 내리는 밤……
머얼리 산턱에 등불 두셋 외롭구나.
이윽고 홀딱 지나간 번갯불에
능수버들이 선 개천가를 달리는 사나이가 어렸다.
논둑이라도 끊어져 달려가는 길이나 아닐까.
번갯불이 스러지자 ,
마을은 비 나리는 속에 개구리 울음만 들었다.
(『초롱불』. 1940;『박남수 전집 1』.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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