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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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박목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지훈(芝薰)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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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난 기타』. 신구문화사, 1959;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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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간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청담』. 일조각. 1964 : 『박목월 시선집』. 믿음사. 200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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