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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 이병기 - 난 / 박목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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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이병기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아 책(冊)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장석남 시배달『사이버문학광장 문장』(2013년 6월 03일)
-시집『난초』(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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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난 기타』. 신구문화사, 1959;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