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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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 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 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 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ㅡ월간『현대시학』(2005. 10)
ㅡ시집『입술』(시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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