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평 시] 삶의 저층에서 나는 소리 / 방민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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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rady@snu.ac.kr |
1. 패자가 열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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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 ||
어떤 일에 공을 들여도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이 적어야 삶을 좀 더 편케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실상은 그런 일이 더 많고 되는 일이 훨씬 적은 게 인생이다.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신기하게도 자기 계산과 딱딱 맞아떨어진 나머지 그 의기양양함이 스스로 감출 수 없을 지경으로 밖에 배어 나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일에 승리를 구가할 때는 더 자만할 수도 있고, 사업 같은 일이 잘 풀려나갈 때는 몸에 흥이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도 같다
하지만 삶은 그 본성이 패배 쪽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에 아무리 성공적일 때도 곧이어 닥칠 좌절을 심정적으로 예비해 둘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내 몸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울 때조차도 곧이어 올 쇠락을 저장해 두고 있으며 삶의 환희에 찬 순간에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자는 가장 기쁠 때 차라리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어리석은 자는 기쁨이 스러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결행한다
이렇게 삶의 본성이 승리보다 패배 쪽에 더 가까움을 알고 나면 패자가 곧 열자는 아님을 깨닫게 된다. 패배하는 자는 삶의 본성에 차라리 가깝고 승리하는 자는 삶이 그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규혁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 글이 인쇄되어 있을 때쯤이면 사람들은 벌써 소치(SOCHI)를 잊고 소치(小癡)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이규혁이라는 선수만은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말했다. “올림픽 메달 때문에 항상 저는 조금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그렇게 마감하지만 올림픽이라는 대회 때문에 많이 배웠고 선수로서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약간은 부족한 스케이트 선수로 끝나고 또 살아가겠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그가 이 말들을 할 때 막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그는 레이스에서마다 혹시 패배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결코 열등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그는 그 패배로 인해 인간의 가장 저층에 가로 놓인 삶의 진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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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시 구절을 읽다 보면 시 쓰는 것만은 귀신 같은 데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을, 이번에 내가 읽은 마애불이 다시 한 번 이를 입증해 준다.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퍼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객들은 그 마애불에 곡식을 바치고 몇 번이고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깊은 밤에 홀로 누워 있을 때 마애불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마와 눈두덩과 양쪽 볼과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내 어느 반석에 마애불이 있는지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데간데없이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 문태준 〈여시(如是)〉(《시인동네》 2013년 겨울호)
이 시에 나오는 마애불은 무엇이냐. 이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게 있다. 최정희라는 작가의 소설 중에 〈흉가〉라는 작품이 있다. 한 여자가 꿈에 어떤 여자를 본다. 눈이 네 개나 되고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괴상망측한 그 여자는 한 손으로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자를 때린다.
그러니까 꿈에 나온 괴물 여자는 꿈을 꾼 여자의 도플갱어라고 할 수 있다.
〈여시〉의 화자는 잠도 자지 않고 도플갱어를 만난다. 하지만 이 꿈도 꾸지 않는 의식 상태야말로 화자가 자신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시사한다.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 그렇게 희박해진 존재감이란 어쩌면 저 화자 너머 시인 자신의 것은 아니겠는지. 그러나 그 희미한 존재의 이름은 그럼에도 여전히 “마애불”이다. 암벽에 새겨 세월 따라 눈, 코, 입, 귀가 쓸려나간다 해도, 사람들은 그를 늘 마애불이라 부르며 그의 덕을 기린다. 희미해도 그 존재는 그냥 희미하지는 않다.
3.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가면 홍도, 거기서 삼사십 분 돌아오면 흑산도다. 흑산도는 흑산도만 찾아가는 외지 사람은 적고 꼭 홍도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길에나 들러야 할 것 같다.
먼 옛날, 29년 하고도 6개월 전에 나는 흑산도에 그렇게 갔다. 그때는 배가 페리호가 아니어서 대여섯 시간 걸려 홍도로 갔다, 다음날 다시 흑산도로 들어갔다. 배가 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그런데 이번 겨울에 나는 참으로 뜻한 바도 없이 갑자기 또 한 번 그 길을 밟았다. 홍도를 찍고 흑산도로. 29년 6개월 더 늙은 눈 속에 그 까만 흑빛 섬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돌아와 흑산도를 노래한 시를 만난다. 또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을 나는 이번 여행 끝에 목포에서 기차를 타려고 역에 들어 있다가 갑자기 만나 손을 잡기도 했으니, 세상의 우연 작용은 그 장난 노릇을 종잡을 수가 없다. 여기 이 사람의 시를 인용해 본다.
상한 짐승처럼 절뚝거리며 스며들고 싶었다 더는 갈 수 없는 작부들의 종착역
슬픔은 더 깊은 슬픔으로 달래라 했던가
늙은 작부 무릎에 슬픔을 눕히고 그네의 서러운 인생유전을 따라가고 싶었다
삭을 대로 삭은 홍어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며 쓰디쓴 술잔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렇게 파란만장의 시간을 가라앉혀 제대로 된 슬픔에 맛이 들고 싶었다
때론 누추한 패잔병처럼 자진 유배를 떠나고 싶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천형의 유배지
절망은 더 지극한 절망으로 맞서라 했던가
후미진 바닷가에 갯고동 하나로 엎어져 흑흑 파도처럼 기슭을 치며 울고 싶었다
다시는 비루한 싸움터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애간장 까맣게 타버린 한 점 섬이 되고 싶었다
— 김선태 〈흑산도〉(《시인수첩》 2013년 겨울호)
흑산도는 부두에 내리면 조촐하면서도 자못 긴 선창가가 특색이다. 이 선창가를 나는 그 29년 6개월 전 여름에 바다로 뻗은 방파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아야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그때 없었다. 섬 안을 연결하는 도로도 없고 차도 없고 오로지 바다와 배와 선창가 술집들밖에 없었다. 그때 그 흑산도는 어업기지요, 바로 옆에 무슨 해군기지도 있는 까닭에 뱃사람이며 군인들을 상대하는 술집 여자들이 많았다. 이 시가 내게 성큼 다가온 것은 바로 이 오래전의 “작부”를 첫 연부터 곧바로 시안으로 불러들인 감각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작부들은 흔치 않다. 술집들은 숱하게 몰락했고 선창 이면으로 숨어 들어가 억지로나 찾아야 할 지경이다.
이 시의 작자는 이 작부와의 만남을 그렸고 그 위에 자신의 ‘까닭 모를’ 패배감, 절망을 홍어를 널듯이 걸어 놓았다. 시에서 상해가는 생선 비린내가 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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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것이 왔을 때 그것이 왜 왔느냐고, 하필이면 왜 내게 왔느냐고, 견딜 수 없노라고, 눈물 흘리며 소리 내서 울지 않고 삶이 원래 그러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평온히 대할 수도 있다.
이를 가리켜 시중에 드는 것이라 하면 그럴 수도 있겠으니 다음의 시는 인생의 철리에 바짝 다가선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날이 풀려 얇은 장갑을 끼니
얼마나 좋은가.
(혹한에 두꺼운 장갑을 끼는 것도
좋았었는데)
날이 풀려 빙판이 녹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벼운 운동화를 신는 것도
좋을시고.
(빙판길에 좋은, 신발을 신는 것도
좋았었거늘)
이런 느낌이 찰랑대는
거기가 시중(時中) 아닌가.
그렇다면
말들을 안 해 그렇지
시성(詩聖) 천지이려니.
—정현종 〈얼마나 좋은가〉(《서정시학》 2013년 겨울호)
참 멋진 시다. 몇 줄 안 써 놓았지만 넓고 깊어 보이잖는가? 경쾌하게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지만 감추고 있는 저간의 사정이 어지간히 무거워 보이잖는가?
이것은 날씨 얘기만은 아니라고 다들 알 수 있지만, 교훈을 주는 데 그치는 단조로움에는 빠지지 않은 게 아니던가?
뭣보다 이 괄호 친 진술의 기술적 묘미는 아무리 감탄해도 지나치잖을 정도다. 언어를 다룰 줄 안 지 한참 된 시인답다.
그런데 한 가지, 마지막 행에서 나는 잠시 생각한다. ‘시중(時中)’에 드는 마음이 ‘시성(詩聖)’을 이룬다는 구절에, 나는 잠시 ‘시선(詩仙)’을 대입시켜 본다.
다들 아시다시피, 두보(杜甫)는 시성이요, 이백(李白)은 시선이니, 이렇게 날 궂으면 궂은 대로 세상을 잊고 풀리면 풀린 대로 세상을 잊은 자는 시성이 아니라 시선이 아녔나 한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몇 번째 수던가에, 한 잔 술에 삶과 죽음이 같아지니 모든 일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다는 대목이 있다. 술로 자기를 잊고 세상을 잊는 자는 신선이 될 수 있다. 날씨가 궂든 풀리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탈속할 수 있다.
5.
시는 저마다 독특한 빛깔이 있고, 그 빛깔마다 독특한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이 소리는 어떤 전체적인 느낌이다. 어떤 시는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난다. 어떤 시는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떤 목소리여도 나쁠 것은 없지만, 이 목소리의 음률은 거칠지 말아야 한다. 또 엉성해서도 안 된다. 의미로나 밀어붙이는 시는 끔찍하다. 목소리의 빛깔에 유의하지 못하는, 둔중함을 보이는 시는 아무리 의미를 좋게 꾸미려 했어도 보기 싫다.
길상호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잃어버린 세상의 정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은 새삼스러운 느낌을 얻게 된다. 시가 적절히 짧은 데다, 시어 또한 아끼고 아끼는 까닭에 시는 전체적으로 언어라는 소리로서 족쇄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적에 가까운 형태를 빚어낸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가랑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누가 거기 두고 갔는지
이 빠진 사발은
똑. 똑. 똑. 지붕의 빗방울을 받아
흙먼지 가득한 입을 열었다
그릇의 중심에서
출렁이며 혀가 돋아나
잃었던 소리를 되살려 놓는 것
둥글게 둥글게 물의 파장이
연이어 물레를 돌리자
금 간 연꽃도
그릇을 다시 향기로 채웠다
사람을 보내놓고 허기졌던 빈집은
삭은 입술을 사발에 대고
모처럼 배를 채웠다
— 길상호 〈빗물 사발〉(《시와표현》 2013년 겨울호)
이 시는 하나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빈집이 있고, 이 빠진 사발이 있다. 세상에서 외면당한 이 물상들에 가랑비가 내린다. 가장 쓸쓸한 장면이다. 패배를 아로새겨놓은 공간이다
비가 내려 빈 사발에 떨어져 내리니 응당 소리가 날 테지만 이 소리마저 어떤 정적에 휩싸여 있는 듯한, 소리의 최소화 효과가 두드러진다. 이 시를 써나가면서 시인이 선택한 어휘들은 서로 부딪혀 파열음을 내는 법이 별로 없다. 어휘들의 음성적 효과들을 무의식 차원에서 숙지하고 있다는 표시다. 이 정적을 타고 이 패배의 공간이 어떤 위로를 받으며 한 번쯤 새로운 생명의 온기를 맛보는 것이다.
방민호 rady@snu.ac.kr / 문학평론가·시인.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평론), 2001년 《현대시》(시)로 등단. 저서로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등과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유심작품상, 김환태평론상 등 수상.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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