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기획] 거처몸살 / 정진규 | ||||||||||
| 시인이 사랑한 봄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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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댁과 소실댁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보체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유는 6년 전 내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함께 거처를 옮긴 30년 동안 수유리에서 피고 졌던 그 산수유다. 그 산수유가 이를테면 본댁(本宅)이고 이곳 보체리 산수유는 소실댁(小室宅)이라고 할 수가 있다.
6년 동안 보체리 산수유는 정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호된 몸살을 앓았다. 이파리가 돋기 전에 꽃부터 보이는 게 봄의 전령사 산수유인데 첫해엔 그 꽃도 보이지 않았고 이파리도 새들새들 돋다가 말았다. 쇠똥 거름을 시인 최창균네 농장에서 얻어다 잔뜩 묻어 새로 심기도 했으며 짚으로 꽁꽁 싸서 겨울을 나게 하기도 했으나 이듬해에도 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어 송이 꽃을 보이다가 말았고 역시 이파리도 배틀어진 그런 형국으로 솟았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콩깻묵을 깊게 묻어준 탓이었을까, 삼 년째 되던 해 봄, 춘설이 난분분으로 내리다 그친 이른 아침 무심히 창가에 서서 내다본 산수유가 눈에 들었다. 노오란 무리를 쓰고 꽃봉오리들이 트고 있는 게 보였다. 여보오―! 그만 집사람을 크게 소리쳐 부르고 말았다.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 떼들, 꿀벌 떼들, 우리 집 뜨락에 어제오늘 가득하다 잔치 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내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이건 아직도 유효해! | ||||||||||
정진규 hdsh1969@hanmail.net / 1960년 〈동아일보〉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공기는 내 사랑》 《律呂集ㆍ사물들의 큰언니》 육필시집 《淸洌集》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무작정》 시론집 《정진규 시 읽기 本色》 등이 있다. 만해대상 등 수상.
<가져온 곳 - 유심 홈>
http://www.yous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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