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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기획] 거처몸살 / 정진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3. 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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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기획] 거처몸살 / 정진규
시인이 사랑한 봄꽃
[71호] 2014년 03월 01일 (토) 정진규 hdsh1969@hanmail.net

                                                 거처몸살 / 정진규
산수유

 

나는 두 그루의 산수유와 동거(同居)하고 있다 한 그루는 수유리에서 30년 동거했으며, 한 그루는 이곳 보체리에서 6년째 동거하고 있다 새 산수유가 아니라 이곳 보체리로 내가 거처를 옮기면서 모시고 온 수유리 30 산수유, 그게 보체리 산수유다 3년 동안 호되게 몸살을 앓고 보체리 산수유로 이제 겨우 자리 잡았다 나도 함께 몸살을 호되게 앓아 주었다 「거처몸살」이라 이름 지었다 수유리와 보체리가 이제 겨우 한몸이 되었다 고백하거니와 내게는 10년도 더 된 거처몸살이 또 하나 있다 한 사람으로부터 떠나야 했던 내 거처몸살, 산수유만큼 사람 몸살은, 사랑 몸살은 자리걷이가 쉽지 않다 그늘 무덤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산수유 한 그루 내 몸살을 눈물겹게 쓸어주고 있다 고맙다 다닥다닥 노랗게 조춘(肇春)으로 터져서!

 

본댁과 소실댁

   
정진규
우리 집 산수유는 두 몸이 한 몸이다. 무슨 연리지(連理枝)의 그것처럼 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맞닿아 결이 서로 통한 그런 형국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연리(連理)의 과정을 거쳐 함께 자리를 잡은 산수유라는 이야기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보체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유는 6년 전 내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함께 거처를 옮긴 30년 동안 수유리에서 피고 졌던 그 산수유다. 그 산수유가 이를테면 본댁(本宅)이고 이곳 보체리 산수유는 소실댁(小室宅)이라고 할 수가 있다. 

 

6년 동안 보체리 산수유는 정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호된 몸살을 앓았다. 이파리가 돋기 전에 꽃부터 보이는 게 봄의 전령사 산수유인데 첫해엔 그 꽃도 보이지 않았고 이파리도 새들새들 돋다가 말았다. 쇠똥 거름을 시인 최창균네 농장에서 얻어다 잔뜩 묻어 새로 심기도 했으며 짚으로 꽁꽁 싸서 겨울을 나게 하기도 했으나 이듬해에도 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어 송이 꽃을 보이다가 말았고 역시 이파리도 배틀어진 그런 형국으로 솟았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콩깻묵을 깊게 묻어준 탓이었을까, 삼 년째 되던 해 봄, 춘설이 난분분으로 내리다 그친 이른 아침 무심히 창가에 서서 내다본 산수유가 눈에 들었다. 노오란 무리를 쓰고 꽃봉오리들이 트고 있는 게 보였다. 여보오―! 그만 집사람을 크게 소리쳐 부르고 말았다.
삼 년 만에 본댁 수유리 산수유와 보체리 산수유가 연리(連理)의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그해부터 꽃다운 꽃을 보았으며 이후 오늘에 이르렀다.
놀랍지 않은가. 시샘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게 본댁과 소실댁인데 이처럼 마침내 화해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내 집 석가헌(夕佳軒)의 산수유, 이름 그대로 실로 저녁이 아름다운 화해의 집, 내 「거처몸살」도 이제 그만하려나.
내 시 〈산수유〉에도 본댁과 소실댁이 있다. 여기 소실댁 〈거처몸살〉을 보였으니 수유리 30년 시절에 쓴 본댁 〈산수유〉를 함께 읽으면 별미일 것이다.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 떼들, 꿀벌 떼들, 우리 집 뜨락에 어제오늘 가득하다 잔치 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내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이건 아직도 유효해!
— 〈산수유― 알 1〉 《알詩》(1997, 세계사)

 

 

정진규 hdsh1969@hanmail.net / 1960년 〈동아일보〉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공기는 내 사랑》 《律呂集ㆍ사물들의 큰언니》 육필시집 《淸洌集》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무작정》 시론집 《정진규 시 읽기 本色》 등이 있다. 만해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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