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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목필(木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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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한 그루 서 있었다 장모님 오 년째 누워 있는 요양병원 창 너머 잔털 송송한 꽃순 매달고 있었다
가는 가지 끝에 매달린 그것은 사춘기 소년의 자지 같다, 라고 쓴 적이 있다 목련은 목필(木筆)의 다른 말이다 시인 함민복은 성기를 족보 쓸 필기구라고 했다 나무는 꽃순으로 족보를 쓴다
느리게 더디게 목련은 죽음으로 지나간다 똥 닦은 휴지처럼, 쓰고 난 생리대처럼 마지막 꽃잎 조각 하나 떨굴 때까지 누렇게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끝끝내 죽음을 견딘다
세상에서 가장 화사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얼굴을 기록한다
미구에 똥오줌 얼룩진 기저귀 찰 젊은 목련이 엘레지* 같은 필기구 매달고 서 있었다.
* 엘레지 : 개의 자지를 일컫는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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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에 겹쳐진 몇 장의 빛바랜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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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 목련만큼 시인들에게 자주 불려 나온 꽃도 드물 것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편질 읽었던 박목월 이래 얼마나 많은 시인이 목련을 불러냈던가. 순백의 화신(花信)은 ‘목련통신’(박정대)이거나 ‘목련열차’(손택수)로 호명되었고, 수천, 수만의 꽃봉오리들은 ‘하늘궁전’(문태준)으로 칭송받았다. 때로 ‘목련꽃도 잘못이다’(윤제림)라고 지청구 들었으나, ‘목련꽃이 지는 까닭’(이선영)을 따지는 이도 있었다. 가늘디가는 가지 끝에 매달린 턱 없이 큰 머리 덕에 ‘미사포’(서대선)를 쓰거나, ‘붕대’(손동연) 감거나, ‘브라자’(복효근)까지 두르기도 했다. 연꽃이 나무에 매달렸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이른 봄추위 채 가시기 전에 잎도 없이 생뚱맞게 저 혼자 꽃 피우는 모습은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유난히 크고 풍성하고 유달리 흰 빛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목련꽃에는 으레 병과 죽음이 따라붙는다.
2.
폐병 말기의 이웃집 사내가 빨랫줄에 널린 이모의 꽃무늬 팬티를 훔쳐 쥐고 수음하다 각혈하는 모습에 데인 어린 시절이 있거니와, 음지의 공터에서 비명처럼, 수포처럼, 밭은기침처럼 솔방울 소복이 매달고 죽어가는 소나무 곁에서 목련나무는 사춘기의 성이 나 꼿꼿해진 성(性)을 가지마다 총총 매달고 있다.(졸시 〈고요한 봄날 풍경〉을 재구성)
3. 그렇다. 죽음이 있으니 성애가 있다. 성과 죽음, 그것은 절취선 그어진 한 장의 초청장이다. 그러나 목련의 성은 불구의 성이다. ‘후카시(ふかし[吹かし])’ 많이 넣은 파마머리처럼 호들갑 떠는 살구꽃의 성도 아니고, 검자줏빛 립스틱 짙게 바른 복사꽃의 성도 아니다. 너무 순결해서 더러운 성이다.
4. 아름다운 힘과 가난한 휴지가/ 어둠의 말미(末尾)에 숨겨져 있다/ 변함없는 4월/ 성애(性愛)의 물은/ 정다운 허리를 타고 내려/ 강을 건너는 봄밤의 노예를 본다/ 바람 잔잔한 날/ 이름없이 그리워지는/ 마른 혀의 봄(―이재행, 〈밤〉)
5. 그리고 뒷모습이 있다. 너무 화려했기에 더 처참한 ‘사랑의 끝판’(한용운)이 있다. 동백처럼 한순간에 끝장내는 치명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울며불며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는 치정의 사랑. 생이여, 그 구차하고 치사한 끝장까지 치러야 온전한 사랑이다. 죽음이여, 온갖 굴욕적이고 처참한 터널을 빠져나와야 비로소 사랑에 이를 수 있다.
6. 이 년마다 받는 건강검진에 잠혈이 보여 비뇨기과로 보내졌다. 낯모르는 동료 교수는 내게 플라스틱 통 건네며 정액을 받아오라 했다. 컴컴한 복도 간호사실 한구석에서 양복바지 내리고 그것을 받았다. 양말과 구두는 벗지 않았다. 먼지 낀 창틀 너머 잔털 숭숭한 꽃눈 찢고 천 송이 만 송이 흰 목련꽃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졸시 〈달도 없는 먹지 하늘〉 일부)
장옥관 og-jang@hanmail.net. 1987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와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를 펴냄. 현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