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각축 / 문인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7. 2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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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2』(국립공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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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형제간의 토닥토닥 하는 싸움은 나중에 우의를 다지는 싸움은 아닌지

 

 

  참 세월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릴 때 영화는 극장에서만 보았고 극장의 전유물이었는데 비디오 대여점이 골목마다 생겨나 상영관이 종료된 영화들을 언제든지 빌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CD에 DVD까지 나오더니 그마저도 어느 새 손 안의 기기인 스마트폰에게 다 빼앗겨 버렸다. 티브와 연결되어 있던 비디오도 이제는 구석으로 물러나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데 예전에 '아름다운 여행' 이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본 적이 있았다.


  9년 동안 아빠와 떨어져 뉴질랜드에서 엄마와 살고 있던 13세 소녀 에이미는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엄마를 잃은 에이미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빠를 따라 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괴팍한 예술가로 행글라이딩광이다 . 이런 아빠와의 사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갈등이 커진다. 엄마를 잃은 슬픔과 좁혀지지 않는 아빠와의 거리 사이에서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토지 개발업자가 집 근처 호수 주변을 파헤치는 것을 본다. 이곳에서 불도저에 깔려 죽은 어미기러기의 주검 주변에서 기러기 알들을 발견한다. 같은 처지에 놓인 기러기 알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집으로 가져와 정성스럽게 돌봐 부화를 시킨다. 그런데 알에서 깨어나 기러기 새끼들은 에이미를 어미인 줄 알고 가는 데마다 졸졸 따라다닌다 가는  각인의 시작이다.


  야생거위의 새끼나 병아리는 태어난 지 2∼3시간만이면 각인이 완성된다고 한다. 언제가 티브를 보니 사냥꾼이 야생거위를 싸서 죽였는데 둥지에 새끼들이 마침 막 부화를 하고 있었다. 새끼들은 사냥꾼이 제 어미를 죽인 사람인 줄도 모르고 사냥꾼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부화하고 나오는 순간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미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야생거위새끼들은 이렇게 처음 만나는 것이 사람이라도 졸졸 따라다니는데  콘라트 로렌츠가 쓴 '솔로몬 왕의 반지' 책에서 보면 야생 청둥오리 새끼는 또 도망을 간다고 한다.

 
  콘라트 로렌츠는 노벨 의학 생리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이며 비교 행태학의 창시자이다. 세계 제1의 동물 심리학자이며 동물 행태학자라고 한다. 그는 야생거위의 새끼들은 사람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는데 야생오리는 정반대로 사람을 피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왜 서로 다른지 알아내려고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래서 먼저 청둥오리와 모습이 비슷한 터어키 오리를 유모로 삼아 알을 품게 하여 부화를 시켰다. 깨어난 청둥오리 새끼들이 당연히 품어준 터어키 오리가 어미인 줄 알고 어미가 부르는 대로 졸졸 따라 다니는 줄 알았더니 부화한 새끼들은 몸의 물기가 마르자 곧장 유모에게서 도망쳐 달아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제 어미를 찾아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겉모습이 청둥오리와 차이가 많이 나지만 소리가 비슷한 흰집오리를 유모로 하여 부화를 시켜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야생오리새끼들은 진짜 엄마로 알고 잘 따라 다니더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콘라트 로렌츠는 시각으로 각인을 하는 야생거위 새끼들과는 달리 야생오리 새끼들은 시각의 각인이 아니라 청각의 각인을 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청각의 각인을 알아낸 그는 쪼그려 앉아서 기어가며 야생오리 어미소리를 흉내내 보았더니 역시 야생오리새끼들이 그의 주위로 막 몰려들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있으면 어미를 찾아 애처롭게 울고 또 소리를 내면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야생거위새끼가 시각으로 각인을 하는 반면 청둥오리새끼들은 청각으로 각인을 한다는 것을 행태실험으로 알아낸 것이었다.


  어릴 때 형제끼리 이불에 뒹굴면서 장난도 많이 쳤지만 툭탁툭탁 자주 싸우기도 했다. 두 살 터울이 나는 형하고는 말다툼 뿐 아니라 붙잡고 멱살잡이도 하고 주먹질도 오갔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형제간에 띠앗머리가 없다고 야단도 치고 매로 혼을 내기도 했었다. 그때 우리 형제가 싸운 것은 훗날 저 새끼염소들처럼 형제들 간에 정이 더 도타워지려고 시각, 청각, 촉각의 공감각으로 각인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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