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밥 / 장석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8. 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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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시집『어둠에 바친다』(청하,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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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그릇을 위하여

 

 

 

  한 그릇의 밥을 위하여 양심을 속이지는 않았는가. 위선과 가식으로 살지는 않았는가. 술집작부처럼 교언영색의 웃음은 흘리지는 않았는가. 불필요한 선웃음으로 불요불급의 아부는 하지 않았는가. 또는 혼자 잘난 체 하다가 세상에 홀로 떨어져 독야청청하다가 왕따가 되지는 않았는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웃과 담쌓고 친인척들과 떨어져 외톨이가 되지는 않았는가.

 
  조련사는 동물을 훈련시킬 때 먹이로 보상을 한다. 돌고래가 조련사가 하라는 대로 잘 하면 포상으로 생선을 준다. 원숭이도 바나나만 들고 있으면 하라는 대로 다 한다. 개는 조건반사에 의해 침을 흘리지만 이미 음식이 뇌리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침을 흘린다. 다 밥을 위해서다. 밥을 위해서는 선해질 필요가 있고 비굴해지거나 굴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식탐에 의한 동물성의 본능일 뿐 사람이 그렇게 먹는 것에 집착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또 그렇지도 않다. 직장살이도 그렇지만 장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들에게 반말을 듣고 무시를 당한다고 감정을 노출하면 손님은 바로 나가 버린다. 뭐라고 해도 참고 팔아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세일즈맨의 성공의 법칙이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손님은 왕이 되어버렸고 왕을 잘 모셔야하지만 직접 부딪치면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꾸욱 참아야 한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 한다. 다 밥을 위해서다.

 
  여기 밥이 있다. 아프고 고단한 밥이 있고 슬프고 비굴한 밥이 있다. 숭고한 밥이 있고 노동의 밥이 있다. 눈물의 밥이 있고. 감동의 밥이 있다. 이런 밥, 저런 밥 비빔밥 짬뽕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때로는 고개를 숙여야 하고 때로는 더 깊이 허리까지 굽혀야 한다는 것을. 밥을 위한 몸은 고단하고 영혼은 늘 고달프다는 것을. 


  신분이 고귀한 왕후재상도 밥을 먹어야 하고 거지도 하층계급 천민도 다 같이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밥을 빌어먹는 방식이 다 다르다. 이 한 그릇의 밥을 빌기 위해 가고 싶은 않은 곳을 가야하고, 하고 싶지 않는 것을 해야한다. 다 밥을 먹기 위해서인데 양심의 말을 목구멍에 가두고 사는 것이 어찌 부끄러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말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어본다. 무위도식하며 눈칫밥 먹는 백수처럼 입맛이 까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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