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워리 비 해피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한번은 장염에 걸려
누렇고 물큰한 똥을 지 몸만큼 쏟아냈지요
아버지는 약값과 고기 값을 한번에 벌었습니다
할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성여고 수위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수육을 산처럼 쌓아놓고 금강야차처럼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씹을 듯했습니다
2.
누나는 복실이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해피야, 너는 워리처럼 되지 마
세달만에 동생을 쥐약에 넘겨주었으니
우리 해피 두배로 행복해야 옳았지요
하지만 어느날
동네 아저씨들, 장작 몇 개 집어들고는
해피를 뒤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왈왈 짖으며 용감한 우리 해피, 뒷산을 타넘어
내게로 도망왔지요
찾아온 아저씨들, 나일론 끈을 내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해피가 네 말을 잘 들으니
이 끈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니?
착한 나, 내게 꼬리치는 착한 해피 목에
줄을 걸어줬지요
지금도 내손모가지는 팔뚝에 얌전히 붙어있습니다
내가 여덟살, 해피가 두살 때 얘기입니다
―시집『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
=====================================================================================================
어릴 때 기르던 개를 추억하면서
'하지홍 교수의 개 이야기'에 보면은 개의 조상은 늑대라고 합니다. 과거 일부 동물행동학자들이 늑대와 자칼의 교잡으로 인해 개가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늑대가 개의 직접적인 조상이며 자칼이 개 혈통형성에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개는 온전히 늑대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믿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늑대, 코요테, 자칼은 서식지가 상당히 다르다고 합니다. 이 세 종류의 야생 갯과 동물과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개들 간에는 번식 장벽이 없답니다. 현재에도 교잡에 의해 잡종이 번식되고 생산이 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수많은 새로운 종이 얼마든지 생산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혈연이 가까워 서로간에 자유로운 번식이 가능한 늑대, 코요테, 자칼, 개들 사이에는 수많은 잡종이 생기는데 반해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호랑이와 사자 사이에서는 일대 잡종은 생겨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호랑이와 사자도 계속 교잡을 하면 새로운 형태의 종이 탄생할 것도 같은데 혈연이 다르기 때문인지 일대가 크면 불임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대 잡종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교접이 가능한 개는 집 지키는 개, 목양견이나 조렵견, 군견, 사냥개, 사냥개도 시각 사냥개와 후각 사냥개와 나눠진다고 합니다. 용도에 따라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지금은 종의 개체가 무려 10억 마리가 더 되는 것으로 추산이 된다고 합니다. 천성이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좋은 개는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의 보호아래 이렇게 많이 번성했는데 야생 늑대의 수는 10만도 못 미친다고 하니 가히 인간의 힘이 놀라울 뿐입니다.
개는 가축 일호로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고 가장 일찍이 인간의 품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같이 희노애락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애완견에서 이제는 당당히 반려자로 신분을 격상시켰으며 지구상에 그 어떤 동물보다 그 지위와 품위가 당당해졌습니다. 비록 자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종의 번식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야생화보다 화초가 질병에 약하듯이 애완견들은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애완견이 한 마리 있습니다만 이 녀석은 선천적으로 아토피에 약하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료 외에 아무 것도 먹이지 말라고 하는데 어디 그게 말이 쉽지 잘 되지를 않습니다. 치킨이라도 먹고 있으면 옆에서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눈에는 눈물까지 고입니다. 차마 애처로워 조금이라도 주면은 여지없이 병원행입니다.
.
우리 나라의 신라시대에도 신분제인 성골, 진골이라는 골품제도가 있었지만 유럽의 어느 한 왕가에서 유독 바보가 많았다고 합니다. 우생학자들이 연구를 해본 결과 가까운 혈족간의 결혼인 근친상간이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런 신분을 증명하는 제도가 개에게도 전수되어 이른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이 되고 있는데 그 순종이 열등인자를 보유하여 각종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을 무수히 만들면서 인간은 편리해졌지만 로드킬로 인한 산짐승들의 사고는 그만큼 더 늘어납니다. 많이 죽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단절되고 끊긴 생태계에 갇힌 동물들은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어 질병에 약한 새끼들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오래가면 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동물학자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닐 것입니다.
.
가축화된 개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식문화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대륙에 따라 개의 쓰임새가 달랐기에 다른 문화가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개고기를 먹든 안 먹든 개에 대한 애련한 정서와 멍울 진 가슴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집에서 기르던 개를 팔았다고 하면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가 개고기를 드시지 않아 지금까지 저도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만 어머니는 생명을 팔았다는 죄책감으로 그릇을 샀습니다. 당시는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때라 다른 용도의 사용처가 많았지만 자식이 탈없이 잘 큰다는 속설을 믿으셨습니다.
한 권의 시집을 꽃을 소재로 하거나 연작 시리즈로 엮은 것도 많지만 전부 개에 대한 소재로 채운 시집이 있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그때 사서 본다고 해놓고는 기록을 해놓지 않아 시인의 이름과 출판사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개에 대한 시 편도 많습니다만 손택수 시인의 '흰둥이 생각' 이라는 시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개에 대한 아픈 정서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를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다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손택수 「흰둥이 생각」 전문
시를 읽다보면은 비슷한 형식의 시를 많이 보게 됩니다. 비슷한 정서와 경험의 공유에서 생겨난 부산물이기는 하지만 이미 남이 쓰고 난 시를 따라 쓰면 감흥이 덜하겠지요. 시가 너무 어려워서 심오한 종교서적이나 철학책을 읽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시도 많습니다만 색다른 표현과 감각적인 언어와 미학적인 측면, 자기만의 경험을 토대로 독창적으로 쓰면 더 좋겠지요.
저는 이 시를 보고 있으면 팝송 한 곡이 생각납니다. '돈 워리 비 해피' 라는 노래입니다. 바비 맥퍼린이 부른 곡인데 권혁웅 시인이 이 노래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감상하면서 이 노래를 들으면 묘한 합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예전의 우리네 정서 속의 개 이름은 '워리와 해피' 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애완견처럼 방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개가 아니라 마당가에 묶어놓고 발길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주먹질에도 꼬리를 흔드는 순하디순한 순둥이 착한 개였고 때로는 엉뚱한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애완견처럼 아무나 보고 꼬리를 흔드는 그런 지조 없는 개가 아니라 주인의 말에 순종하며 비록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주인일지라도 부르면 언제든지 와서 납작 엎드리던 개였습니다.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이 외며 다 잘될 거야, 행복할 거라며 반복하는 바비 맥퍼린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걱정도 근심도 다 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픈 기억도 잊혀지면서 곧 행복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한 환상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걱정하지마 해피' 하면서 해피를 목줄에 걸어 아저씨들에게 건네주었는데 지금도 내 팔뚝의 손모가지는 얌전히 붙어 있다는 화자는 어릴 때 개가 남긴 아픈 추억이 상처가 되어 가슴 한켠에 옹이로 박혀 있습니다. 해피와의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은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사정과 죄책감 때문에 해피가 잊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걱정하지마 해피' 라는 시의 제목이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해피로부터 '괜찮아, 괜찮아 자책하지마' 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 워리 비 해피, 돈 워리 비 해피" 개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있다면 여러분들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위무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새 / 감태준 (0) | 2014.08.16 |
---|---|
밥 / 장석주 (0) | 2014.08.16 |
각축 / 문인수 (0) | 2014.07.29 |
대추 한 알 / 장석주 (0) | 2014.07.29 |
다시, 묵비 / 최명란 (0) | 201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