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ㅡ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2014년, 문학동네)
나이탓인가요... 날이 새고 나면 여기저기서 꽃부음이 들려옵니다. 오늘도 꽃부음 하나가 꽃잎 떨어지듯 날아들었습니다. 가깝고 멀고를 떠나 삼사십 젊었을 적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나와 상관없는 산 너머 먼나라 얘기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람소리에도 귀신의 소리가 들리고 꽃보다 잎이 더 경이로워 보이는 나이쯤 되면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본다는 정일근 시인의 싯귀처럼 꽃피는 봄날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혼자 문득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나희덕 시인은 꽃 지기 전에 놀러오라고 전화하던 그에게 끝내 놀러 가지 못하고 ‘문상’이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가는 것이 돼버렸다고 시에서 말합니다. 조문은 너무 늦은 안부라며 함순례 시인은 문병을 가자고 합니다. 죽은 다음 놀러를 가는 것보다 꽃 피는 날 전화를 하는 낫고 살아 있을 적에 병문안을 가보는 것이 낫겠지요. 부모 형제, 자매에게 혹은 지인에게 더 늦기 전에 꽃이 좋다고 꽃 피는 봄날 전화도 한번 하고 조문은 너무 늦은 안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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