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유심』(2003년 봄호)
―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2008)
곤드레나물밥을 먹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비빔밥은 뭐니 뭐니 해도 양념장이 그 맛을 좌우하는데 토속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과 파가 함께 적절하게 잘 섞여야 제 맛이 난다. 곤드레나물 비빔밥 하면 떠오르는 고장이 강원도 영월, 평창 정선 지역일 것이다. 이 지역의 특산물이고 향토음식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쪽 지역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리지날 제철의 것을 먹으려면 봄에 이쪽으로 행차를 해야하겠지만 오히려 도시에서 먼저 묵나물로 그 맛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곤드레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맛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꽃사진을 찍다가 엉겅퀴와 닮은 보라색 꽃을 보았다. 언뜻 색깔과 생김새는 엉겅퀴와 비슷한데 히마리가 없다고나 할까. 가시도 없고 잎도 부드러워 보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고려엉겅퀴고 이 고려엉겅퀴가 바로 곤드레나물이었다. 어느 날 단체여행을 갔다가 이 곤드레나물밥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밀려드는 사람들과 우왕좌왕 자리를 잡아 허겁지겁 먹어서 그런지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김남극 시인은 곤드레나물에 첫사랑의 양념을 잘 엮어 맛있게도 버무려놓았다. 이 시를 보고 난 후 다시 한번 곤드레나물밥이 먹고 싶었는데 어찌하다보니 그 뒤로는 여직 먹어보지 못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이 지역에 가서 한창 곤드레가 풍성할 때 호젓하게 여유를 가지고 그 맛을 음미한다면 곤드레나물밥의 오묘한 진미를 터득할 수 있을까. 간장양념에 잘 버무러진 밥과 나물을 첫사랑처럼 한 숟갈 입에 넣고 소가 되새김하듯이 우물우물거리면 이 시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ㅡ출처: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 안도현 시배달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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