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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패 / 박이화 - 카톡 좋은 시 90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5. 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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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90     

똥패

 

박이화

 

화투라면

꾼 중의 꾼이었던 나도

다 늦게 배운 고도리 판에서는

판판이 깨어지고 박살납니다.

육백시절의

그 울긋불긋한 꽃놀이패를

그러나 고도리 판에서는 만년 똥패를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상 막판에 피박을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저 한물간 낭만주의에 젖어

이 시대의 영악한 포스트모던에 영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도 움직인다는 016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아날로그 추억에

젖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애도

버리지 못하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젖은 꽁초러럼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데도

홍도의 순정으로 도무지,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히든패가 아닌 세상!

잊어야 하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흥얼거려지는 당신

흘러간 동숙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이라면

당신은 분명

내 생애 최악의 똥패인지 모릅니다. 

 

시집그리운 연어(애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