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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의 초대/조정권 - 카톡 좋은 시 93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5. 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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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93    

고요로의 초대

조정권

 

잔디는 그냥 밟고 마당으로 들어오세요 열쇠

는 현관문 손잡이 위쪽 담쟁이 넝쿨로 덮인 돌

벽 틈새를 더듬어 보시구요 키를 꽂기 전에

그맣게 노크 하셔야 합니다 적막이 옷매무새라

도 고치고 마중 나올 수 있게

대접할 만한 건 없지만 벽난로 옆을 보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장작이 보일 거예요

그 옆에는

낡았지만 아주 오래된 흔들의자

찬장에는 옛 그리스 문양이 새겨진 그릇들

달빛과 모기와 먼지들이 소찬을 벌인 지도

오래되었답니다

방마다 문을, 커튼을,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쉬세요 쉬세요 쉬세요 이 집에서는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도 손님이랍니다

많은 집에 초대를 해봤지만 나는

문간에 서 있는 나를

하인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십시요

그 무거운 머리는 이리 주시고요

그 헐벗은 두 손도

 

시집 고요로의 초대(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