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사람
김명인
그가 묻는다,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언제쯤 박음질된 안면일까, 희미하던 눈코입이
실밥처럼 매만져진다
무심코 넘겨 버린 무수한 현재들, 그 갈피에
그가 접혀 있다 해도
생생한 건 엎질러 놓은 숙맥(菽麥)이다
중심에서 기슭으로 번져가는 어느 주름에
저 사람은 나를 접었을까?
떠오르지 않아서 밋밋한 얼굴로
곰곰이 각별해지는 한 사람이 앞에 서 있다
―시집『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민음사, 2015)
모임에서나 길을 길가다 잘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체를 하면 어떨까. 언제 어떤 인연으로 잠시 만나 뜻없이 헤어졌는지 모르지만 시에서처럼 무수한 현재들 속에 무심히 접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인연 속에 어느 한 부분 특별히 접혀지지 않는 기억이라 난처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에게 난감할 것 같기는 하다. 갑자기 자신이 숙맥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인과 관계에 따라 한때 가까웠다가 멀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지워졌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잠시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각별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사전의 정의를 빌리면 특별히 유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내 생애 각별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각별했으면 그도 각별했을까. 나는 지웠는데 그가 지우지 않고 그가 지웠는데 내가 지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가 각별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가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듯 가뭇없이 지워질 것인가. 각별하지 않아서 각별해지는 사람. 시는 특별히 유난하지 않는 사람을 더 각별하게 만들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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