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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값
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계간『문학·선』(2006년 겨울호)
어머니가 방세를 받으려고 방을 놓은 것도 아니고 우유 값을 받으려고 우유를 먹인 것도 아니겠지요. 세를 살고 젖을 먹었으면 먹은 만큼은 몰라도 다만 몇 백분의 일이라도 갚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생각뿐이지 그 또한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전생의 부모가 현생의 자식으로 환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요. 다들 부모보다 제 자식들에게는 없는 거 없이 잘해주고 있습니다. 내리 사랑이라는 말처럼 저도 한때 부모에게서 받은 것은 자식에게 내려주는 것이 도리는 아닐지라도 순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승에 가서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식은 부모에게 뻔뻔하고 영원한 채무자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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