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디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집『조국은 하나다』(남풍신서, 1988)
이 시를 읽다가 반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청산하지 못한 역사' 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왜 이 책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1, 2, 3권으로 정치, 종교, 역사, 음악·미술, 언론, 검찰·군인, 학술, 법조, 여성계, 관료, 문학 등 각 분야에서 친일파들의 행적을 추적해 놓은 책이다. 여기서 문학에 관련된 인물들만 나열해보면 친일 문학의 선구자 이인직, 민족개조를 부르짖은 변절 지식인의 대명사 이광수, 예술지상주의 파탄과 친일문학가 전략의 김동인, 대동아공영의 꿈을 읊조린 어릿광대 주요한, 각종 친일단체의 핵심으로 맹활약한 친일 시인 김동환, 여성 교화사업의 첨병 모윤숙, 친일 국민연극을 주도한 근대 연극사의 거두 유치진, 서구적 지성론자에서 천황숭배자로 변한 최재서, 인간탐구론자에서 국민문학론자로의 백 철, 황국문학의 품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김기진, 카프문학의 맹장에서 친일문학의 선봉으로 박영희, 그리고 우리에게 ‘자화상, 국화 옆에서’ 시로 널리 알려진 서정주 시인은 친일시와 광복 이후의 활동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독립군의 관한 기록물들은 보면서 내가 만약 일제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번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처와 자식과 가정의 편안한 길을 버리고 국가와 민족의 대의를 위해 혹독한 시련의 독립투쟁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자신이 없다. 한 달 두 달, 일이년도 아니고 무려 36년의 세월이었다. 어떤 관료는 우리나라 독립은 요원할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당근과 미끼와 억압과 협박, 끊임없는 회유에 지식인들조차 지치고 회의를 가졌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변절자가 나온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시에 나오는 어떤 괸료는 국가적으로 보아 인재 중의 인재다. 성실하고 정직하며 모범적인데다 능력까지 겸비했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반듯하게 뵈는 사람이다. 아마 가정에서도 다정다감한 남편이며 아버지이며 훌륭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 만주국관학교의 우수한 인재로 나중에 정치권에 투신한 특출한 몇몇 인물들이 그려진다. 어떤 관료의 사람은 어떤 재난의 국가적인 위기가 오더라도 시대와 상관없이 출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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