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장마/김주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7. 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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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김주대

 

 

아버지만 당신의 생애를 모를 뿐

우리는 아버지의 삼개월 길면 일 년을

모두 알고 있었다

누이는 설거지통에다가도 국그릇에다가도

눈물을 찔끔거렸고

눈물이 날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이구 더바라 아이구 더바라 하며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놓고 했다

아직은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했으니

모두들 목구멍에다가 잔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지는 않았다

병원 출입이 잦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무표정해진 아버지 얼굴에는

숨차게 걸어온 오십구 년 세월이

가족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전에 없이 친절한 가족들의 태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이미

당신의 남은 시간을 다 알고 있으면서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생애가 그렇듯 애써 태연한 건지도

여름내 아버지 머리맡에 쌓이는

수많은 불교서적들에서

내가 그걸 눈치 챌 무렵

어머니가 열어놓은 창 밖에는

긴 장마가 끝나가고 있었다

 

 

 

시집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 시작, 2007)

 

    

 

  우리네는 부모님이 불치의 병에 걸리면 그 사실을 당사자인 환자에게 알리지를 않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병을 알고 나면 더 악화될 것을 염려한 탓이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가족들이 병명을 거짓으로 알려주거나 다르게 알려 주어 자신이 정작 무슨 병이 어떻게 걸렸는지 얼마를 살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앓다가 돌아가시었다. 이런 거짓말을 백색의 흰 거짓말이라고 한다. 상대방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이지만 이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려주는 쪽이 낫다는 추세다.

 

  물론 우리네와 정서가 다른 서구 쪽은 다르다. 불치의 병이 진단이 되면 의사는 가족뿐 아니라 당사자인 환자에게 병의 종류와 경과를 자세히 설명을 하고 거기에 따른 적절한 치료와 환자의 마음가짐을 일러준다. 환자는 완쾌와 생의 연장을 희망하며 한편으로는 죽음을 대비한다정신이 맑을 때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자신이 처리해야할 일들을 다 해놓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에게 장마는 길고도 길었을 것이다. 죽음 중에 육친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의 슬픔이 억제된 과장의 너스레와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어쩌지 못하는 누이의 감정의 눈물은 설거지통, 국그릇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 몰래 떨어진다. 무거운 침묵의 공기가 온 집안을 휩싸며 시간이 가는 건지 밥을 먹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무력의 시간이 긴 장마처럼 길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