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리운 102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 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 한다
―시집『그리운 102』(문학과시성사, 1996)
아날로그 시대의 연시의 대명사 같은 좋은 시 한 편을 본다. 보낸 시간을 초까지 알 수 있는 이메일을 넘어 언제나 내 살처럼 곁에 붙어 있는 휴대폰 카톡, 밴드 시대에 이 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펜팔을 해보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 시의 기다림이 어떤 의미임을 알 것이다. 손으로 편지를 쓰고 우체부의 손을 빌려 편지를 받아보던 시절에는 기다림이 좋았다. 내가 쓴 편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했는지 궁금한 것도 좋았다.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약속한 사람이 그 시간에 오지 않으면 바람 맞은 것은 아닐까 화가 나다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엉뚱한 생각이들기도 했다. 혹여 무슨 다른 좋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에서 화자는 오지 않는 사람을 비와 더불어 하냥 기다린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예사로움을 넘어 지고지순의 감동을 준다. 불 꺼진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이 싯귀를 대하고 나면 가슴이 턱 막힌다.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햐 오는 이 비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비가 되어 이 은행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도 올 때까지 기다린단다. 기다림도 이 정도라면 기다림의 예술이다.
이승하 시인의 ‘백년후에도 읽고 싶은 백편의 시‘ 라는 제목의 평설을 엮은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책 제목만 보고 여기저기 몇 군데서 시를 보았지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아날로그의 멋진 이 연시가 만약 백년 후에도 읽힌다면 어떻게 읽힐까. 기다림으로 친다면 시대를 달리해도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심전심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