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신경림 시인편<특강 :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2. 23. 08:37
728x90

 

 신경림 시인편<특강 :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

강연일시 : 2004년 6월 18일(금) 19:00 ∼ 20:30


강연 .........질의·응답


- 본강연 -

이시영 : 오늘은 신경림 선생님의 특강입니다. 신경림 선생님은 너무도 유명한 『농무』를 비롯해서 여러 권이 시집이 있고 지난 3월에 ‘창비’에서 『신경림시전집 1, 2』권이 나왔습니다. 신선생님이 금년에 고희를 맞으신 해여서 창비에서 그 기념으로 시전집 1, 2권을 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축하드릴 일이 있는데 엊그제 있었던 예술원 회의에서 신선생님이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가 주제입니다. 신선생님께서는 시인이실 뿐만 아니라 시에 관한 산문도 많이 쓰셨습니다. 비평문을 포함해서 시에 관한 에세이, 시 감상, 해설서 등을 많이 쓰셨는데 특히 우리 시 읽기에 아주 밝은 눈을 지니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강연해주실 것은 아마 그동안 읽어오신 시들을 중심으로 신선생님의 시 독서편력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가 좋은 시

신경림 :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시를 쓰고 읽어온 경험을 통해서 어떤 시를 읽는 것이 재미있을까, 어떻게 시를 읽어야 재미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최근에 나온 잡지들을 훑어보면서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정말로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번을 읽어봐도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 잘 모르겠어요. 본인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시를 쓰고 있단 말이죠. 시인 스스로 갈피를 못 잡고서 독자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시를 읽으면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왜 시를 읽습니까? 저도 옛날에 시 읽던 때를 생각하면서 내가 왜 시를 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시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보는 어떤 말이 듣고 싶어서 시를 읽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읽던 시 가운데서 얼핏 생각나는 게 이형기 시인입니다. 「강가에서」라는 시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물을 따라/ 자꾸 흐를라치면// 네가 사는 바닷말에/ 이르리라고// 풀잎 따서/ 작은 그리움 하나// 편지하듯 이렇게/ 띄워본다.”

그때 왜 이 시가 좋았냐하면, 저도 강가에 살았습니다만 강을 따라 자꾸 흘러가면 그 강 끝에 바닷말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거든요. 역시 나하고 다르게 강물을 바라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읽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뭔가 자기하고 조금 다르게 세상을 보면서 그것이 호소력을 가질 때 시가 재미있게 다가오는 거죠.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여러분들 다 아시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도 고등학교 때 읽은 시니까 이형기의 「강가에서」하고 거의 같은 무렵일 거예요. 제가 아주 좋아했던 시죠. 뭔가 관념적이긴 하지만 사물이라는 것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그 사물을 뭐라고 지칭할 수 없는 것이죠. 제가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의 글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 사람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미처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 아하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이 시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한참 뒤에 저는 시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정의내렸습니다. 시라는 것은, 내 시를 보고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 때 내 시는 성공한 시가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그것입니다. 무언가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을 시에서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시를 읽으면 사물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김춘수의 「꽃」도 처음에 발표될 때는 지금과 달랐어요. 어릴 때 이 시를 읽고서 거의 몇십 년 만인 삼사 년 전에 다시 읽고 저는 놀랐어요. 이 분이 뒤에 가서 바꿔 놓은 걸 몰랐구나 하고서 말이죠. 첫 시에서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고 했거든요. 왜 ‘의미’가 ‘눈짓’으로 변했을까요. 60년대에 김춘수 시인은 무의미 시를 쓰겠다고 했죠. 무의미 시를 쓴다고 해놓고서 ‘의미’가 되고 싶다고 하면 말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고친 것은 아니었을까 여깁니다만 여하튼 뭔가 조금 다르게 보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또 한 편 인용해볼까요? 이 시도 제가 중학교 시절에 읽은 시입니다.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죠. 「그리움」이라는 시는 두 편이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닭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짧은 「그리움」이라는 시가 있고 또 다른 「그리움」이라는 시는 이렇죠.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이 시를 읽고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깃발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닙니까. 그 깃발이 펄럭펄럭 날리는 것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잃어버린 그리움,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해낸다는 게 얼마나 시적입니까. 이 시에 매료되어서 유치환 시를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유치환 시인이 전후에 『보병과 더불어』라는 전쟁시집을 하나 낸 적이 있어요. 그걸 읽고 나서는 다시는 유치환 시를 읽지 않았습니다만, 그 외에 다른 시들은 참 많이 좋아했어요. 저는 유치환 시인처럼 연애시를 잘 쓰는 시인이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김소월의 연애시는 좀 촌스럽고 징징 울기만 해서 재미가 없어요. 유치환 시인의 연애시가 최고죠. 그 중에 「낮달」이라는 시가 있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길거리를 가다보니까 낮달이 하나 떠 있어요. 그 낮달을 보면서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시죠. 낮달을 보면서 잃어버린 사랑으로 인해서 가슴속에 생긴 상처로 생각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겁니까. 역시 읽는 사람보다 뭔가 한 발짝 앞서서 생각한 것이고 또 새로운 각도에서 낮달을 보게 하는 거니까 그 시가 재미있는 시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 젊은 시인들의 시는 잘 안 외어져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좋은 시는 잘 외워진다는 것이죠. 저보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어요. 에즈라 파운드라는 사람이 1930년대에 『세계시선집』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두보(杜甫)의 “나라는 깨어져도 산천이 남아 있어”로 시작되는 「춘망(春望)」이라는 시를 세계의 걸작이라고 말하면서 그 얘기를 했어요. “나는 중국시를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두보의 시를 읽었더니 금방 기억이 되더라.” 외워진다는 거죠. 시가 좋다는 증거이죠.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보다 뭔가 다르게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보통사람이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고 듣는 것 이것이 곧 시인의 기능이고, 보고 듣고 만져서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시죠. 시를 읽을 때 제일 재미없는 시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는 시죠. 노래는 뻔한 이야기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만 시는 뻔한 이야기를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감동을 주는 시란 삶의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시

시인은 남들보다 다르게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백 발짝쯤 앞서서 사람들이 전혀 짐작도 못하는 소리를 하면 곤란한 거죠. 그러면 시가 한참 어려워지게 되죠. 가령 이상(李箱)의 시를 생각해봅시다. 여러분들 이상 다 읽었죠? 나는 이상을 좋은 시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시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보는 눈이 남들과 달라야 하고 한 발짝 앞서 있어야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조금 더 앞서 있고 조금 더 달라야지 완전히 다르면 그것은 좋은 시라고 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런 생각이어야 하는데 생활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서 겉돌기 때문이죠. 이상의 시 같은 경우는 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죠. 그러니까 점점 어려운 시가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삶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시가 되어서는 감동을 줄 수가 없죠. 말(言)이라는 것이 왜 생겨났겠습니까. 사람이 살기 위해서 생겨난 거죠. 남과 함께 살지 않을 수 없으니 생겨난 겁니다. 그런 말을 가지고 하는 예술이 바로 시라는 것입니다. 그 예로 시를 하나 들어보죠. 50년대 시인 중에 송욱(宋稶)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공부벌레 학자이고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 시인이었습니다. 그 사람 주장이 시라는 것은 삶의 현실하고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시편 중에 두 편은 참 좋아요. 「장미」(1950)라는 시가 있어요.

“장미밭이다./ 붉은 꽃잎 바로 옆에/ 푸른 잎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서슬이 푸르렀다.// 벌거숭이 그대로/ 춤을 추리라./ 눈물에 씻기운/ 발을 뻗고서/ 붉은 해가 지도록/ 춤을 추리라.// 장미밭이다./ 핏방울 지면/ 꽃잎이 먹고/ 푸른 잎을 두르고/ 기진하며는/ 가시마다 살이 묻은/ 꽃이 피리라.”

내용상으로 크게 어려운 건 없어요. 그러나 이 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예요. 이 시 자체가 삶의 현실하고는 동떨어진 거예요. 사람 사는 냄새도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 시를 나쁜 시라고 평가하지는 않아요. 시라는 건 꼭 명확하게 해설이 되는 시만이 좋은 시가 아니라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도 있는 거니까요. 말하자면 시가 어려워지는 것은 삶의 현실하고 동떨어져서 말을 가지고 장난을 하다보니까 쓸데없이 어려워지고 난해시가 되어 독자들로부터 유리되는 거죠. 이 사람의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죠. 「비 오는 창」이라는 시입니다.

“비가 오면/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입김 서린 두 가슴을/ 창살에 낀다.// 거슴츠레/ 구름이 파고 가는/ 눈물자욱은/ 어찌하여 질 새 없이/ 몰려드는가.// 비가 오면/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이슬 맺힌 두 가슴을/ 창살에 낀다.”

이 시도 역시 내용이 어려운 시는 아니지만 과연 이 시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이 시 역시 삶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시죠. 물론 이 시가 아주 형편없는 시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나름대로 리듬감도 있고 뭔가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정통적인 입장에서 좋은 시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난해시하고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시의 감동이라는 점에서 한번 이야기해보죠. 저는 서정주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물론 그분의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거론이 되기는 합니다만, 서정주 시인의 말 다루는 솜씨는 빼어나다고 말할 수 있고 장인 같은 점이 느껴지는 시인이죠. 그런 점에서 그 시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시인의 시들, 특히 후기의 시를 읽고서 감동을 받은 시는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왜 그랬을까요? 서정주 시인의 초기시는 삶의 현실 속에서 나온 시였는데 뒤에는 그렇지 않고 말장난에 빠져서 말을 즐기면서 쓴 시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거죠. 예컨대 「동천」 같은 시가 있어요. 그 시를 가지고 한국 시가 도달한 최고 경지의 시라고 극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시가 좋은 시임에는 틀림없죠. 그러나 이 시를 읽고서 과연 내가 감동을 받았는가, 또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동양적인 아름다움 같은 것이 이 시 속에 들어 있구나 하는 느낌은 받았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감동은 받지 못했습니다. 아름답긴 한데 감동은 안 줘요. 왜냐하면 이 시에도 삶의 현실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고 삶과는 유리된 말의 재미에 빠진 시이기 때문에 깊은 감동은 주지 못한다는 거죠. 여기에 비해서 서정주 시인의 초기시 중의 하나인 「문둥이」 같은 시는 훨씬 더 감동을 주는 시죠.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이 시가 훨씬 더 삶의 현실에 밀착되어 있어서 더 깊은 감동을 받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국화 옆에서」가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불리어지고 천지의 오묘한 섭리를 그려낸 시라고 극찬을 받지만 사실 이 시는 좀 ‘만든’ 시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물론 이 시는 아름답죠. 그러나 이 시는 뭔가 불교적인 섭리를 작위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어서 「자화상」이나 「문둥이」 같은 시보다는 덜 감동적이라는 거죠. 이 시에서도 삶의 현실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시를 읽을 때 그 시인이 현실을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가가 느껴질 때 진짜 감동을 주는 시라는 거죠. 제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한 시인은 이용악이라는 시인이었어요. 이용악의 시 중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쪽」이라는 시가 있어요.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제게 가장 좋은 시 한 편을 꼽으라고 하면 이 시를 꼽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시가 왜 그렇게 좋은가 하면 바로 이 시 속에는 삶의 현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말기의 참으로 살기 힘든 곤궁한 시대에 자기 고향을 생각하며 쓴 시죠. 이 시는 이러한 삶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혼탁한 세파에 휩쓸리며 살지 않으려는 치열한 정신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시

젊을 때 읽은 시인 중에서는 이병철이라는 시인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 시인도 1950년대에 월북을 한 시인인데 북쪽에 가서는 큰 역할을 못한 것 같아요. 그 시인의 시 중에 「나막신」이라는 시가 있어요.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제가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시골에 살고 있었어요. 이 짧은 시 속에 시골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 같은 것이 소박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이 시를 보면서 정말 샘물을 떠 마시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역시 이러한 시는 즐거운 시이면서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의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치열한 삶 속에서 얻어진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시는 읽어서 그림 같이 머리 속에 남는 시거든요. 저는 그런 시를 참 좋아합니다. 1910년대에 에즈라 파운드, T.E. 흄 등 영미 시단의 시인들이 이미지즘 운동을 벌였어요. 그 운동을 벌인 동기가 되는 것은 일본시나 당시(唐詩)라고 해요. 에즈라 파운드가 우연히 동양적인 것에 눈을 돌려서 일본의 하이꾸 또 중국 당나라 때의 시를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구의 시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미지즘 운동은 시를 명확하게 쓰자는 게 첫번째 주장이었어요. 두번째는, 시의 소재라는 것은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다라는 것이었죠. 즉, 시의 소재라는 것은 생활 자체에서 나와야 된다는 것이지요. 세번째로, 시에 쓰는 말 이것은 철저하게 삶에서 쓰는 말이어야지 특별히 시를 위해서 쓰는 것은 아름다운 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죠. 네번째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리듬이라는 것은 삶의 현실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그들이 주장한 것이 당시(唐詩), 일본시에서 배우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두보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두보의 「춘망(春望)」이라는 시를 보니까 꾸밈이 없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바로 삶의 현실 속에 우리 자신이 뛰어드는 것 같다는 거죠. 그런 시를 보면서 영미의 시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낀 거죠. 나중에 제가 조사를 해봤더니 이 말 역시 에즈라 파운드가 스스로 생각해낸 말이 아니고 청나라 때의 어느 비평가가 「춘망」을 극찬하면서 한 얘기였다고 해요. 이렇듯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는 시가 좋은 시라는 것임에는 여러분들의 생각도 일치할 겁니다. 김종삼이라는 시인 기억하십니까? 제가 좋아하는 그 시인의 시중에는 「묵화(墨畵)」라는 시가 있어요. ‘묵화’란 건 붓으로 그린 그림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머릿속에 늙은 소와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 시를 제가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미지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서구에서는 한참 뒤인데 우리나라는 옛날 고려시대 때부터 이미지라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을 보면 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는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어요. 시라는 게 이미지라는 거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시를 읽고 나면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딱 떠오릅니다. 저는 박목월도 좋아했습니다만 그의 시에도 그런 게 많이 있습니다. 「윤사월」도 그런 시 중의 하나가 아닙니까?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시도 읽으면 그림 한 폭이 그려지죠. 「나그네」도 마찬가지죠.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보다 이 시를 짓게 만든 또 하나의 시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이죠.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구절을 변이시킨 것이 바로 박목월의 「나그네」라고 할 수 있는데 조지훈의 「완화삼」은 문학사 속에서 거의 기억을 해주지 않고 박목월의 「나그네」는 높이 평가를 한단 말이죠. 왜냐하면 조지훈의 「완화삼」은 뭔가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르는 그림 같은 것이 없고, 박목월의 「나그네」는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아까 말했듯이 사람은 말을 가지고 생활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말이라는 것이 생겨난 겁니다. 말이란 건 결국 삶 속에서 나와야 한다, 말을 소재로 한 시라는 것은 삶에서 동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거죠. 20세기 이전만 해도 시라는 것은 그저 노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는 곧 노래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이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는 다만 노래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생각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냐는 거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에 하나를 더 붙인다면 시라는 것은 역시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죠. 시는 사회성이라는 것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시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답 같은 성격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제가 창작해낸 말이 아니고 마야코프스키가 한 말입니다. 러시아 시인 마야코프스키는 “시라는 건 당대의 사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고 말했어요. 시가 가진 사회성이나 역사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을 때 시를 읽는 재미는 배가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컨대 김남주 시인이나 김지하 시인의 시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 또 그 시가 재미난 것은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이기만 하면 문학 이야기

여하튼 옛날에는 모이기만 하면 꼭 문학 이야기를 했어요. 누구 시가 좋다 나쁘다 그런 이야기하면서 술상도 엎지르고. 제가 천상병 시인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르네상스’라고 음악을 틀어주는 다방이 있었는데 거기에 평론가 유종호씨와 갔더니 유종호씨가 임재경이라는 신문기자를 소개시켜주었어요. 그리고 임재경이라는 분이 황명걸이라는 시인을 소개해줬어요. 그 황명걸 시인이 늘 같이 다니던 사람이 천상병 시인이었어요. 소개를 받으면서 악수를 하는데 천상병 시인이 하도 못생겨서 갑자기 웃음이 쿡 나왔어요. 그랬더니 왜 웃냐고 그러더군요. 하도 못생겨서 웃었다고 하니까 천상병 시인이 그래요. “이놈아, 사돈 남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해서 굉장히 친해졌는데 그 당시에는 술만 먹으면 꼭 문학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한번은 소설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월북작가 현덕(玄德)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고 하니까 천상병 시인이, “니가 현덕을 어떻게 아냐”고 그래요. 그래서 현덕의 소설 한 대목을 줄줄 외웠어요. 그랬더니 천상병 시인이 깜짝 놀라면서 “야! 너 나하고 친구하자”그래요. 그래서 더 친해지게 됐죠. 김지하 시인하고도 이용악의 「북쪽」을 서로 외우면서 친해지게 됐구요. 그때는 술 먹거나 안 먹거나 매일 문학 이야기 하고 그랬지요.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같은 시는 제가 참 좋아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도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자연을 뭔가 새롭게 보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이 시의 가장 절창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대목인데 이 세상에 사는 것을 소풍 나온 거라고 보는 거죠. 이 시를 읽으면서 천상병 시인은 뭔가 한 발짝 앞서 있는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상병 시인한테 설명을 들었더니 자기가 가톨릭을 믿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하더군요. 이 세상 사는 건 잠깐 소풍 나온 건데 아름답고 즐겁게 살다 가야 된다고 해요. 뭔가 세상을 착하고 순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시인 것 같습니다. 시라는 건 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기능도 하는 것 같아요.

이시영 : 백석은 많이 읽지 않으셨습니까?

신경림 : 백석도 많이 읽었는데 깜빡했네요. 백석을 참 좋아했지요. 어릴 때는 백석, 이용악, 박목월, 서정주 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백석, 이용악이 더 좋아지더라구요.

이시영 : 만해(萬海) 시도 좋아하십니까?

신경림 : 만해 시도 좋아하죠.

이시영 : 김기림 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경림 : 김기림도 좋아해요. 저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같은 시를 아주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너무 이론에 밝은 사람이라 이론을 앞세워서 시가 늘 이론에 치어요. 그러나 이상과 더불어 김기림의 산문은 일급입니다. 한때 저도 한글전용론자였는데 그렇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바로 김기림의 ‘한글전용론’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였어요. 김기림이 1947년에 ‘한글전용론’을 썼는데 기가 막히게 잘 썼어요. 김기림의 산문은 아주 뛰어나죠.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 없는 빼어난 산문이죠.

이시영 :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경림 : 김수영의 시는 일부는 굉장히 싫어하고 일부는 또 굉장히 좋아하고 그래요. 초기시는 싫어하고 후기시는 참 좋아하죠. 초기시에서는 지식인의 냄새가 많이 나고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4·19를 겪으면서 터져나온 후기시는 굉장히 좋습니다.


- 질의, 응답 -

문 : 2002년도엔가 한겨레신문에서 선생님의 칼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시인의 결벽증이 그립다’는 것이었는데 이 시대 시인들이 어떤 결벽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답 : 시를 함부로 써서 남발하기보다는 단 한 편으로 승부를 거는 그런 결벽증이 아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령 1920년대 ‘백조’의 초기 동인으로 노자영(盧子泳)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를 수없이 썼고 아주 인기 있는 시인이었죠. 그런데 지금 노자영이라는 시인을 누가 압니까. 또, 5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은 공중인(孔仲仁)이라는 시인이었습니다. 신문에 시를 연재했는데 가판에서 그 사람의 시가 없으면 안 팔릴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 누가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해바라기의 비명」이라는 단 한 편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함형수 시인 같은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다는 거죠. 그 이야기는 곧 너무 억지부려서 시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도 되겠죠. 단 한 편을 써도 좋은 시를 쓰는 게 의미 있는 것이 되겠지요.

문 : 선생님의 『뿔』이라는 시집 뒤에 시인의 말을 보니까 시를 쓰는 일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즐겁다고 하셨는데 즐겁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 ‘절규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답 : 시 쓰는 일이 즐겁다고 한 것은 사실 제가 한때 너무 시를 통한 거대담론에 빠진 적이 있어요. 민중, 민주, 통일, 노동, 민요, 민족 이런 문제들에 너무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니까 시가 쓰기 싫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시를 못 쓸 것 같아서 그런 속박으로부터 풀려나게 됐죠. 그러니까 시 쓰는 일이 쉬워지고 즐거워지고 그랬다는 말이죠. 그리고 ‘절규성’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요. 98년엔가 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문학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한국은 시가 아직도 앞날이 양양하다고 말했죠. 그렇게 말하고 내려왔는데 일본인 소설가가 나와서 일본 소설은 망했다고 이야기하더라구요. 그러면서 한국시에는 아직도 ‘절규성’ 같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한국시는 아직도 생명력이 넘쳐 있는데 일본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우리 시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좀더 에너지를 분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문 : 김수영 시인의 후기시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답 : 후기시 중에 예를 들어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같은 시는 아주 선명하죠. 김수영 시인이 아마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그의 시가 엄청나게 변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뒤로 오면서 점점 더 현실 속으로 뛰어들고 치열하게 사회성, 현실성을 획득했죠. 4·19 이후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씌여진 시들은 참 좋아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