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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부근/정세기 - 카톡 좋은 시 219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2. 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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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219     

   성당 부근

   정세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성당 가까이에 살던 그해 겨울

   지붕들이 낮게 엎드려

   소리 없이 젖어 잠들고

   그런 밤에 내려온 별들은

   읽다 만 성경 구절을

   성에 낀 창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눈사람이 지키는 골목길을 질러

   상한 바람이 잉잉 울고 간 슬픔을

   연줄 걸린 전깃줄이 함께 울고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종소리가 은은한 향기로 울려퍼지면

   저녁 미사를 보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긴 그림자도 젖어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장작더미 위로

   쌓이던 달빛이 스러지고 사랑하라

   사랑하라며 창가에 흔들리던 촛불도 꺼진 밤

   그레고리안 성가의 낮은 음계를 밟고

   양떼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성당 뜨락엔 마리아상 홀로 남아

   산수유 열매 같은 알전구 불빛을 따 담고 있었다

 

시집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실천문학사, 2002)

 

 

 

 

성당 부근

 

정세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성당 가까이에 살던 그해 겨울

지붕들이 낮게 엎드려

소리 없이 젖어 잠들고

그런 밤에 내려온 별들은

읽다 만 성경 구절을

성에 낀 창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눈사람이 지키는 골목길을 질러

상한 바람이 잉잉 울고 간 슬픔을

연줄 걸린 전깃줄이 함께 울고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종소리가 은은한 향기로 울려퍼지면

저녁 미사를 보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긴 그림자도 젖어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장작더미 위로

쌓이던 달빛이 스러지고 사랑하라

사랑하라며 창가에 흔들리던 촛불도 꺼진 밤

그레고리안 성가의 낮은 음계를 밟고

양떼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성당 뜨락엔 마리아상 홀로 남아

산수유 열매 같은 알전구 불빛을 따 담고 있었다

 

 

 

시집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실천문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