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225 - 빈 손의 기억/강인한
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 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 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 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ㅡ시집『입술』(시학, 2009) |
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 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 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 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ㅡ월간『현대시학』(2005. 10)
ㅡ시집『입술』(시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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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권혁웅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 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 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시집『황금나무 아래서』(문학세계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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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뜨는 날
이홍섭
때로 가슴에 파묻는 사람도 있어
그게 서러울 때면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를 뜨지요
먼 당신은 파문도 없이 누워
내 설움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지요
그러면 나도 어린아이처럼 약이 올라
있는 힘껏 몸을 수그리고
멀리, 참 멀리까지 물수제비를 떠요
물수제비 멀리 가는 날은
내 설움도 깊어만 가지요
―시집『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세계사, 2005)
―중알일보『시가 있는 아침』(2007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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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뜨는 날
이가림
내가 던진 돌멩이가
물 위를 담방담방 뛰어가다가
간 곳 없이 사라진다
측심기로 잴 수 없는
미지의 바닥에 돌멩이는 잠드는 것일까
잠시 일렁이던 파문도 자고
물 거울에 뜨는 산 그림자의
입 다문 얼굴,
나는 무감동한 고요를 깨뜨리기 위해
또 하나의 돌멩이를 멀리 팔매 친다
죽음에 배를 대고
팽팽한 찰라만을 디디고 가는
한줄기 생명의 퍼덕임을
어렴풋이 보았다
아이와 함께
물수제비 뜨는 날
―시집 『순간의 거울』(창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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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뜨는 물수제비
정성수
비 내리는 호수 가에서
내가 뜨는 물수제비를 그대가 받았을 때
그대는 내 가슴에
사랑의 징표로
점점점, 말줄임표 하나 찍었습니다
물결이 물결에게 건너가고 건너오는 동안
호수가 제 몸을 열어주어
수심의 깊이를 알았습니다
어느 날, 삶의 의미를 걷어내면서
내가 뜨는 물수제비로 하여금
잠시 흔들렸을 뿐이라며 그대는
그대와 나 사이에
점점점, 마침표를 세 개씩이나 찍어놓고
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시집 『唱』(청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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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강현욱
강가에 앉아 돌을 던지면
네가 내게 올 것만 같았다.
한 움큼 조약돌은 강물 앞에서
바싹 엎드려 너에게로 달려가다
서성이며 옹알대며 가라앉았지.
숨통에 강물 차오르던 순간마저도
물살 흔적이 너를 간질여
미소만은 보게 되리라 생각했었지.
돌 던지는 소년은 간데없고
빈손으로 주저앉은 청년 앞에는
수몰된 조약돌의 무덤뿐이다.
봉분 딛고 일어설 그날까지
돌무덤이 강 건널 징검다리 될 그날까지
강변의 자갈들과 함께 불러본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섬아
청년에게 남은 또 하나의 작은 조약돌아.
─반년간『시에티카』(2014년 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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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최진
배고픈 웅덩이
물수제비가 날아오자
밥! 밥! 하며, 입을 벌린다
뽈,
뽈,
뽈,
받아 먹으려는 입들
차례로 지나
쪽―
입맞추는
입 속으로
쏙, 들어간다
―동시집『선생님은 꿀밤나무』(청개구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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