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지·카톡·밴드/카톡 ♠ 좋은시

봄비/이재무 - 카톡 좋은 시 279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5. 2. 22:35
728x90





           카톡 좋은 시 279 - 봄비 / 이재무




  봄비/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 한다

  빗 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로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묘목을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봄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봄비 싸돌아 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봄비


  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 한다
  빗 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로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묘목을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봄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봄비 싸돌아 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