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집『망향』(문장사, 1939) |
종편채널을 돌리다보면 귀촌, 귀농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나온다. 귀농이나 귀촌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이른바 자연인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프로그램도 자주 볼 수 있다. 개그맨이 출연하여 이삼일 같이 생활하며 자연인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백석 시인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고 했다. 자연인이라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정말 자연이 좋아서 아내와 허락과 자식들의 동의하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세상에 이기지 못해 져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사업을 실패하고 재기를 노리며 절치부심하다 그마저도 놓치고 사기 당하고 심신이 피폐해져 시난고난 병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세상을 버린 사람들이다. 종편들이 이 방송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시청자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이런 곳에 들어와서 사는 자연인들의 생활상은 초라하지만 마음과 몸은 건강하다. 오히려 저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면 긍정과 어떤 대리만족 같은 것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고개를 넘어서는 사람들은 물질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피부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원시 하면 ‘일어나 지금 가리,/이니스프리로 가리’로 시작되는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수섬’이 생각나는데 그래도 전원시의 백미하면 이태백의 ‘산중문답’을 꽂는다. 우리나라 많은 시인들도 전원을 노래했다. 조지훈 시인의 산중문답(山中問答)도 있고 주요한 시인의 전원송(田園訟)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자화상처럼 전원시도 한 편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원시의 백미를 꼽는다면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아닌가 싶다.
먹을 만큼 심고 거두고 조금 남아돌면 나눠주면서 유유자적의 삶이 한가롭다. 이 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화룡정점은 바로 마지막 3연의 두 행인데 왜 그런 곳에 가서 사느냐고 도회인들이 물어보면 그냥 웃는다고 한다. 이 웃음에는 모든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하는 이에 따라 이 대답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물어보라. 누가 왜 사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돌려줄 수 있을까.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집『망향』(문장사,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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