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292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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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푸른 잎의 구멍이다. 한 갈래 시내가 답답스럽게
풀잎이 은빛 조각을 걸면서
노래하고 있다. 태양이 거만한 산의 어깨로부터
빛나고 있다. 광선이 방울짓는 작은 골짜기다.
젊은 병사 한 명이 모자도 없이 입을 벌린 채
싹트기 시작한 푸른 풀싹에 목덜미를 담근 채
잠자고 있다. 구름 아래 있는 풀밭에 누워
광선이 쏟아지는 초록색 침대에 창백한 모습으로.
민들레 떨기 속에 발을 넣고 자고 있다. 병든 아이가
미소짓든 웃으면서 꿈꾸고 있다.
자연이여,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어라, 추워 보이는 그를.
초목의 향내도 그의 코를 간질이지 못한다.
햇빛 속에서 고요한 가슴에 두 손을 올려 놓고
그는 잠잔다, 오른쪽 옆구리에 두 개의 빨간 구멍을 달고서.
-김희보 엮음『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총알을 맞고 풀밭에 쓰러져 있는 병사를 본 1815년 당시의 소년의 인상을 생생하게 말한 것으로 에드가르 키네의 「나의 사상의 역사가 있다」. 랭보는 보블 전쟁 당시의 인상을 노래하고 있다. 원시는 1888년 르메르 판 「19세기 프랑스 시인 선집」제 4권에 실려 있다.(책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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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천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놓고 가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조선일보』. 1959 3. 24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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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모윤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마지막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풀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물린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다. 다시 오지 않으리다.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리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을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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