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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냄새/윤의섭 - 카톡 좋은 시 305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7. 2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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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좋은 시 305 - 윤의섭 / 바람의 냄새





바람의 냄새/윤의섭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봐라

어느 성소를 지나오며 품었던 곰팡내와

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 무덤 냄새를

달콤한 장미 향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

바람에게선 사라져 간 냄새도 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의 머리 내음

숲을 빠져나오다 문득 햇살에 잘려 나간 벤치의 추억

연붉은 노을 휩싸인 저녁

내 옆에 앉아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안아주던 바람이

망각의 강에 침몰해 있던 깨진 냄새 한 조각을 끄집어낸다

이게 무언지 알겠느냐는 듯이

바람을 안고 다니던 멸망한 도시의 축축한 정원과

꽃잎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혀 가 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런 알지도 못하는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에도

도무지 이 바람이 전해 준 한 조각 내음의 발원지를 알 수 없다

먼 혹성에 천년 전 피었던 풀꽃 향이거나

다 잊은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살내거나

길을 나서는 바람의 뒷자락에선 말라붙은 낙엽 냄새가 흩날렸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제 봄이 오기 전까지

저 바람은 빙벽 속에 자신만의 제국을 묻은 채 다시 죽을 것이다

 


시집마계(민음사, 2010)




바람의 냄새


윤의섭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봐라

어느 성소를 지나오며 품었던 곰팡내와

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 무덤 냄새를

달콤한 장미 향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

바람에게선 사라져 간 냄새도 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의 머리 내음

숲을 빠져나오다 문득 햇살에 잘려 나간 벤치의 추억

연붉은 노을 휩싸인 저녁

내 옆에 앉아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안아주던 바람이

망각의 강에 침몰해 있던 깨진 냄새 한 조각을 끄집어낸다

이게 무언지 알겠느냐는 듯이

바람을 안고 다니던 멸망한 도시의 축축한 정원과

꽃잎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혀 가 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런 알지도 못하는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에도

도무지 이 바람이 전해 준 한 조각 내음의 발원지를 알 수 없다

먼 혹성에 천년 전 피었던 풀꽃 향이거나

다 잊은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살내거나

길을 나서는 바람의 뒷자락에선 말라붙은 낙엽 냄새가 흩날렸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제 봄이 오기 전까지

저 바람은 빙벽 속에 자신만의 제국을 묻은 채 다시 죽을 것이다

    


 

월간현대문학2010, 5)

시집마계(민음사, 2010)



바람의 시 편 - 정한모/정호승/마종기/윤의섭/마경덕/손미/황형철/김승희/신달지/정현종/이은규 외...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4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