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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최준
불꽃도 꽃이었다 한때
글썽이고 일렁이던 그대와 나, 촛불이었다
사위는 순간 서로가 지워졌다 자취 없이 사라져 갔다
타오르기는 했던가 만난 적 있었던가
오늘도 그 길 반추하며 서 있다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30』(머니투데이, 2014년 11월 24일)
그대와 나’란 말만큼 설레고 애잔한 말이 또 있을까. 봄은 봄이라서 그대와 나란 말이 설레고 가을이면 가을이어서 그렇고 여름은, 겨울은 또 어떤가. 그렇게 사시사철 품고 소망하며 사는 말이 ‘그대와 나’이다. 더욱이 어떤 이유로든 큰 불길로 활활 타올라보지 못한 서로의 촛불 같은 존재들이라면 애잔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 시인이여, 불꽃도 피었다 지는 꽃은 꽃이며 촛불도 한때 한곳을 밝혔던 불은 불이리니. 그 기억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아픈 사랑도 한때의 추억이 되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세상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어떻게 살아도 내가 살아낸 내 생이니만큼 그 한 대목을 지우거나 도려낸다면 결코 길지 않은 생이 그나마 허무해질 일이므로. 달리하면 지상의 모든 사랑은 길 위에서 시작하고 길 위에서 끝나는 것 아니던가. 생 자체가 길 위의 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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