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1 시를 쓰기 전에 / 윤석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12. 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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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무엇을 쓸까      작성일 : 2005-11-23

1. 시를 쓰기 전에

                     ☺ 어머니는 제가 문학 청년 시절에 시 쓰는 데 바치는 노력이면 판검사(判檢
                            事)도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아주 …



젊은 날에는 누구나 한번쯤 시인이 되려고 합니다. 가슴 속에서 들끓는 생각들을 작품으로 쓰고, 먼 훗날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날 기억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인이 되려면 먼저 왜 쓰려고 하는가, 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장차 시인이 되어 활동할 문학사회(文學社會)는 어떤 곳인가부터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1) 왜 쓰려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시는 다른 사람에게 <교훈>이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쓴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공자(孔子)께서 ‘?시경(詩經?)의 시 300편은 한 마디로 말해 사특함을 없애기 위한 것(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든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가 ‘교훈과 재미를 함께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이런 예에 속합니다.


* 사진 : 동양 시의 연원인 "시경"을 편찬한 공자(BC 552-BC 479)

그러나, 이런 주장은 독자의 입장에서 본 것으로서,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남을 위해 쓰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를 표현함으로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리적 균형을 취하기 위해 쓴다는 게 더 정직한 대답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있잖습니까? 쓸쓸할 때 친구에 하소연하거나 노래방에 가서 슬픈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런대로 가라앉는 거 말입니다.

  물론, 이와 같이 자기 심정을 털어놓는 방법으로는 시 쓰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종류의 글을 쓸 때에도 자기 생각을 털어놓고 하소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다른 예술로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쓰고 싶어하는 것은 시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기능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필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시보다 논리적으로 써야 합니다. 그리고, 소설이나 희곡은 다른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서 그 인물에 적합하지 않은 내 이야기는 제외해야 합니다. 또,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다른 예술은 말 대신 소리나 색채를 이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내 생각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글을 쓰려는 것은 단지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만 쓰는 게 아닙니다. 사르트르(J. P. Sartre)는 자아를 <홀로 있는 나(en-soi)>와 <타인과 관계를 맺은 나(pour-soi)>로 나눕니다. 그리고 나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은 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 글 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달리 자기가 원할 때만 글을 통해 만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한번 나를 따른 독자들은 현실의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나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능력을 길러줍니다. 인간이 갖춰야 할 능력은 크게 <정보 수용(受容)>과 <자아의 표현(表現)>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여야 삶을 유지하고, 삶은 타자에게 자아를 표현하여 가치를 만들어 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정보는 주로 <듣기>와 <읽기>로 수용됩니다. 그리고 자아의 표현은 <말하기>와 <쓰기>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수용보다는 표현이 더 고도의 능력에 속하고, 표현 가운데서 말하기보다 글 쓰기가, 글 쓰기 가운데 시 쓰기가 가장 고도의 능력에 속합니다. 따라서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언어 생활 전반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능력은 다시 인간 관계를 다루는 <인문>․<사회>․<예능> 분야에 고루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시문(詩文)에 능한 사람들을 관리로 뽑아 썼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는 논리학(論理學)이나, 수학(數學), 과학(科學)의 분야에도 일정한 수준에 이른 다음에는 시적 상상력과 직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습니다. 뉴톤이 발견한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을날 과수원 길을 걷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이 법칙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계산에 들어간 게 아니라, ‘하늘의 달과 별은 꼭지도 없이 높은 곳에 떠 있는데, 왜 그보다 낮은 곳에 매달려 있는 사과는 떨어지는가’라는, 다시 말해 <달=사과>라는 시적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추론을 하고 계산한 결과가 만유인력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자기가 상상한 것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자는 숫자나 공식으로, 사회과학자는 제도와 행위로 구체화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는 정신적인 위안을 주지만 실생활에는 별로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몇 가지 영역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규명하여 신(神)이나 만들 수 있는 생명을 공장에서 만들어내고, 첨단 과학자들만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유치원생도 이용하는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시를 쓰는 능력은 아주 중요한 능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공산품을 생산하는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기능이 뛰어난 것이 우수한 제품이었지만 요즈음에는 인간적인 따스함과 상상력을 감각화하여 디자인한 제품이 우수한 제품으로 꼽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따스함과 현실을 초월하는 상상력은 시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따라서 시 쓰기는 취미나 정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산업 시대에서 자기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
○ 시작(詩作) 노트를 마련하고, 자신의 경험을 더듬어 언제 시가 쓰고 싶었으며, 왜 시를 쓰려 했는가를 적어 보십시오.
 


<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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