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를 쓰기 위한 준비 / 작성일 : 2005-11-25
☺ 저는 준비성이 부족해서 출근할 때마다 두서번씩 현관문을 다시 엽니다…
자아, 이제 왜 시를 써야하는가 알아보았으니, 시를 쓸 때 어떤 필기 도구를 선택하고, 어떻게 원고를 관리하며, 쓰기 전에 심리적으로 준비할 것들은 무엇이며, 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독서해야 하는가가 알아보기로 합시다.
■ 필기 도구와 원고 관리
종래의 문인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동양 문인들은 붓으로, 서양 문인들은 까만 까마귀 깃털 펜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인들은 이런 과거의 필기구로 쓰는 게 더 운치(韻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볼펜이나 만년필로 쓰면 마음에 들 때까지 개작(改作)하기가 어렵고, 여러 해 쓰다보면 원고가 흩어져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컴퓨터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새로 컴퓨터를 장만하려면 언제 어디에나 휴대하고 다니며 쓰고, 그렇게 쓴 원고를 메일로 보낼 수 있는 무선 통신 포트가 장착된 노트북이 좋습니다.
컴퓨터로 쓸 때는 ‘내 문서’ 폴더에 <시>라는 하위 폴더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저장할 때는 작품 제목으로 파일명을 붙이고, 초고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붙여 저장한 다음, 그 작품이 완성되면 나머지 파일을 지우고, 연말에는 다시 연도별로 폴더를 만들어 관리해야 후일 ‘작품 연보(年譜)’를 만들기가 쉽습니다.
개작을 할 때는 컴퓨터 화면에서 고치는 것보다 프린트해서 고치는 게 좋습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고치면, 손으로 쓸 때보다 타이핑 속도가 빨라 문장이 길어지고, 빨리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에 눈에 띄는 것만 고치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개작을 위해 출력한 것들은 초고부터 차례대로 노트나 오래된 잡지에 붙여두십시오. 개작할수록 작품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칠 때는 제법 그럴 듯했지만 며칠 후 다시 읽어보면 전에 쓴 것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원고가 완성되어 문예지에 보낼 때는 가급적 그 책의 활자 크기와 형식에 맞춰 편집한 다음 2부를 뽑아 하나는 시작 노트에 붙여 두고, 잡지사에는 다른 하나와 파일을 보내십시오. 어떤 사람은 기껏 컴퓨터로 완성을 하고도 출력한 원고만 보내고 있는데, 그런 필자들에게는 편집부에서 ‘아이구, 이 답답한 사람…’하고 욕합니다. 편집부에서는 그를 조판하기 위해 다시 입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편집하는 방식은 자기 글이 실릴 문예지의 한 페이지에 몇 행, 한 행을 몇 자씩 조판했는가를 살핀 다음 스타일을 설정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모(公募) 작품일 경우는 책으로 인쇄했을 때보다 조금 큰 활자체(명조나 신명조)로 응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작은 글씨나 이상한 활자체는 가독율(可讀律)이 떨어져 심사위원들이 읽는 데만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발표할 글이 아니면 메일로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블로그를 열어 음악과 사진이나 동영상과 결합시켜 영상시(映像詩)로 만들어 올리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향후 10년 이내의 모든 문학 작품은 이와 같은 멀티(multi) 형식을 취한 것이 주류를 이룰 것이고, 잘만 하면 멀티 아트의 원조(元祖)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참에 산문 쓰는 방식도 함께 알아두기로 합시다. 산문을 쓸 때는 반드시 <개요 쓰기 기능>을 이용하기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스타일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론’이니 ‘본론’이니 하는 큰 제목들은 큰 활자로, 그 다음 것들은 보다 작은 활자로, 본문은 좀 더 작은 글자로 정하고, 한 문장의 길이와 한 페이지의 행수를 정한 다음 쓰면 그 원고를 책으로 펴낼 때 어떤 모양이 될지 예측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합니다.
또 한 단락씩 완성하려 하지말고, 처음에는 ‘1.서론’, ‘2.본론’처럼 단어식큰 항목을 쓰고, 각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은 빠르게 개조식(個條式)으로 써넣어 가십시오. 그러니까, 서론을 쓰다가 결론에서 할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 쪽으로 이동해 써넣고, 중복되는 이야기는 어느 한 쪽을 삭제하고, 제 자리에 박히지 않은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옮겨가며 전체 개요를 완성한 다음 문장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저는 지금 이 책도 이런 방식으로 써나가고 있습니다.
■ 심리적 준비
글 쓰기의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 준비입니다. 대단한 각오를 가지고 쓰기 시작한 사람들도 도중에 포기하는 것은 이 심리적 준비를 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준비에서 우선 할 것은 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이 가운데 먼저 몰아내야 할 생각은, 시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영감(靈感)을 받았을 때만 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단번에 매끈한 작품을 써낸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일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로부터 시는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야만 쓸 수 있다는 ‘천부영감설(天賦靈感說)’이 세력을 떨쳐왔고, 그로 인해 서양에서는 시를 ‘신들린 자들의 말(poesy)’이라고 부르고, 동양에서는 ‘기(氣)’로 쓰며, 기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다는 기상론(氣象論)이 세력을 떨쳐 왔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미 시인이 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물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단번에 완벽한 작품을 쓰는 사람도 있지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조식(曺植)이라는 사람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의 형인 조비(曺丕)가 콩을 제재로 삼아 궁녀가 일곱 걸음을 걸을 때까지 쓰지 못하면 죽인다고 하자,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가마솥의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 이다지 급히 삶아 대는가(煮豆燃豆汽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라고 써서 오늘날까지 회자(膾炙)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명작들은 설익은 시상에서 출발하여 오랜 동안 다듬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혹시 "인간희극(人間喜劇)"을 쓴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발자크(H. de Balzac)를 아시나요? 그에 대한 평전(評傳)을 읽어보니까, 그는 언제나 밤 12시가 되면 두꺼운 커텐을 내려치고 반짝이는 은촛대 위에 6개의 촛불을 밝힌 다음 아침 8시까지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그의 책상 풍경을 소개해볼까요? 왼편에는 푸르스름한 종이 뭉치가, 그 앞에는 예비용 잉크 한두 병과 까만 까마귀 깃털 펜 두세 개, 오른 쪽에는 글을 쓰면서 다음 장에 쓸 착상들이 떠오르면 메모할 수첩을 놔두고, 작업복으로는 카톨릭 수사(修士)들이 입는 수도복을 입고, 소매를 걷어 부친 다음 연신 아주 진한 커피를 마셔대며 밤새도록 썼다고 합니다.
아침 8시, 하인 오귀스트가 쟁반 위에 빵 몇 조각과 커피를 받혀 들고 서재로 들어오면 커텐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한 시간쯤 욕조에 들어가 쉬고, 다시 작업복인 수도복을 걸치고 나오는 순간 서재 밖에서 기다리던 인쇄소 심부름꾼들이 들어와 어제와 그저께 써서 넘긴 1차와 2차 교정지를 내밀고….
그런데 그 교정지는 보통 교정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작가들의 것은 책보다 조금 크고 값싼 노란 종이이지만, 그의 것은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하이얀 전지(全紙), 그러니까 책 크기의 8배나 되는 종이 한 가운데 인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교정지가 이렇게 특별한 것은 인쇄소에 특별히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정지를 받아드는 순간 한눈에 예닐곱 줄씩을 읽습니다. 그리고는 깃털 펜을 펜싱 검처럼 휘두르면서 박박 긁고, 인쇄가 되지 않은 여백의 여기 저기로 줄을 그어 인쇄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쑤셔박듯이 써넣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교정부호만으로는 부족해 새로운 부호를 만들어 쓰고, 그로도 부족해 새로운 종이에 번호를 붙여가며 보충할 내용들을 써서 더덕더덕 붙인 다음 오후 5시에 인쇄소 심부름꾼을 통해 돌려보냅니다.
그걸 받아든 인쇄소 풍경일랑 여러분들이 상상해 보십시오. 식자공(植字工)들은 삥 둘러서서 서로 쳐다보며 낄낄댑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얼굴이 울그락 프르락해져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고. 그래도 그걸 고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시간당 2배의 수당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마침내 한두 사람을 골라 협박 겸 회유했다고 합니다. 그 엉망진창의 교정지를 맡은 사람은 그 날 저녁의 데이트는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의 교정 작업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이튿날 9시에 다시 교정지를 넘겨받으면 성난 사자처럼 갈가리 찢고, 할퀴고…. 그렇게 일곱 차례 이상을 되풀이하여 200쪽 짜리 책의 교정지가 2000쪽이 넘어가고, 마침내 인쇄소 사장과 대판거리를 해야 겨우 끝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발자크의 괴팍한 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닮으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 단락을 저 단락 뒤로 옮기고, 이 단어는 저 단어로 바꾼 다음 엔터(enter) 키를 누르면 책과 똑 같은 교정지가 나오고, 그걸 고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번에 써낸 것 치고 위대한 작품은 드물고, 시의 퇴고량은 산문보다 훨씬 적으며, 시인이냐 아니냐는 등단(登壇) 여부와 몇 권의 시집을 발행했는가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가 여부라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작품은 인쇄된 활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완성하려는 시인의 정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몰아내야 할 생각은, 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다음에야 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한 때 대학생들을 자꾸 문단에 내보내니까 몇몇 문인들이 시는 손끝으로 쓰는 게 아니라 영혼으로 쓰는 거라면서, 어린애들을 그만 내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시가 요구하는 것은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진지한 정서와 풍부한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보편적이고 점잖은 것을 중시하는 나이든 사람들보다 젊은이들이 더 풍부합니다. 그것은 젊은 날에 아주 뛰어난 작품을 쓰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맥빠진 작품을 써내는 것이라든지, 문학사에서 거론되는 작품의 대부분이 20대 전후 젊은이들이 쓴 작품이라는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그런 것들이냐구요?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16세에,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은 18세,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는 19살에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정지용(鄭芝溶), 이상(李箱), 서정주(徐廷株), 청록파(靑鹿派)의 대표작들 모두가 25세 이전에 쓴 것들입니다. 좋은 작품을 쓰자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정신적 긴장을 유지해야하는 데, 젊을수록 긴장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험과 학식이 풍부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뒤늦게 시인이 된 선배들이 후배들의 등장을 억누르기 위한 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떠오르는 것이 있어야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몰아내야 합니다. 물론 무엇을 쓸지 막연한 상태로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란 죽을 맛이지요. 그러나, 어떤 주제를 정하고 쓰기 시작하면 언어가 언어를 자극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제가 지금 이 장(章)을 쓰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전체 내용을 마련해놓고 쓰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시를 쓰겠다고 덤벼도 곤란하다는 생각에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하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래도 용기를 북돋아주는 게 옳다는 생각에 시인들은 이데아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므로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공화국(共和國)’에서는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플라톤(Platon)의 ‘시인 추방론’을 비롯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논리만 모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조식 이야기도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글 쓰기란 참 묘한 겁니다. 일단 쓰려고 마음 먹고 쓰기 시작하면 말이 말을 몰고 와 새로운 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다듬을수록 위대한 작품에 가까워집니다. 인간의 능력은 누구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것은 미문(美文)이나 명문(名文)이 따로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글들이 따로 있고, 그런 글을 쓰겠다고 벼르면, 쓸데없이 심리적 부담만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글이 아름다운 글입니까? 미사려구(美辭麗句)로 이어지는 글입니까? 그렇다면 ‘미사려구’란 어떤 것들입니까? 멋있는 말로 쓰여진 것들이라구요? 전 그런 글들을 읽을 때면 조미료를 잔뜩 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느끼해서 싫대요.
또 명문(名文)는 어떤 글들입니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라구요? 그럼 어떤 글이 감동을 줍니까? 아름답고 진지한 글이라고요?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든지 진지함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 같은 글을 읽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예컨대, 이별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그런 노래만 부를 겁니다. 그런데 그의 결혼식장에서 그런 노래를 축가로 부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전날 밤 친구들과 ‘댕기풀이’를 할 때도 그런 노래를 불렀을 테지만 결혼식장에서 부르면 아마 불같이 화낼 겁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미문이나 명문보다는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의도에 알맞은 구조와 조직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을 쓸 때는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미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서, 진지함은 그런 조화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독서 방법
이젠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독서 방법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예로부터 좋은 글을 쓰려면 되도록 많은 책을 읽으라고 권유해왔습니다. 이와 같이 독서를 중시해온 것은 그 과정에서 나도 이런 작품을 써보겠다는 충동이 떠오르고, 그를 모작(模作)하는 과정에 그 장르의 문학적 관습(literary convention)을 터득하고, 쓰고 다듬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이 읽었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을 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학에서 문학이론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의 경우을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교수님들보다 더 많은 작품을 읽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들도 드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쓰는 분이 드문 것은 교수님들의 독서가 창작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연구를 위한 독서였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유형은 크게 <이해(理解)의 독서>, <감상(鑑賞)의 독서>, <비판(批判)의 독서>, <창조(創造)의 독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해의 독서>는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밑줄을 그으며 주제를 잡고, 낱말 뜻을 알아보고,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의 독서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독서는 정보를 파악하는 데만 초점을 두어 지식을 증가시킬 뿐, 글 쓰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이 그 많은 책을 읽고도 작품을 못 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 감상의 독서>는 그 작품의 줄거리나 표현의 재미를 맛보며 읽는 방법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심심할 때 쇼파에 누워 재미로 읽는 방식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이런 유형은 <이해의 독서>보다 작품을 쓰는 데 한결 도움이 됩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전개 방식이나 표현을 자기 작품을 쓸 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에 푹 빠져 읽다보면 그 작품과 다른 작품과의 차이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뭔가도 따지지 않고 읽기 때문입니다.
< 비판의 독서>는 그 작품을 읽으면서, 테마와 등장 인물의 관계를 따지고, 작중 인물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앞뒤 단락이 인과적으로 연결되었는가, 각 문장에 동원한 어휘들이 등장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것인가, 말하려는 의미만이 아니라 뉘앙스까지 전달되고 있는가 등을 따지며 읽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자기 글을 쓸 때 적용할 수 있어 앞의 두 방식보다는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쓰지 않으면 이 방법은 <이해의 독서>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일정한 분석 능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방법이며, 독서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게 단점입니다. 일일이 따져가며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유형인 <창조의 독서>는 비판의 독서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것으로서, 현재 읽고 있는 내용을 제재로 삼아 머릿속에서 또 다른 작품을 쓰며 읽는 방식을 말합니다. 가령,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라는 문장을 읽는다고 합시다. 그 문장이 지시하는 의미만 떠올리지 말고, 해풍에 휘날리는 그녀 머릿결은 어떤 색깔일까 생각해보고, 그녀는 아마 간밤에 애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그들이 만난 카페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글라스와 ‘있잖아, 나 내일 여행 떠나’라던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그 작품을 끝까지 읽기 어렵다는 게 약점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쓰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써야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으면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 후르륵 넘기면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골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신문을 뒤적거리고, 한가할 때는 거실의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여 쓸거리를 머리 속에 저장해둡니다.
자아, 독서 방식을 알아봤으니, 읽을 거리를 고르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이왕이면 가치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게 좋겠지요? 이 가치는 크게 <문학사적(文學史的) 가치>와 <문학적(文學的) 가치>로 나눠집니다. 문학사적 가치는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미나 문학적 기준으로 판단한 가치를 말합니다. 그리고 문학적 가치는 그 작품을 읽는 현재 기준으로 판단한 가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학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문학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나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형시만 시로 취급하던 1908년의 기준에서 최남선의 신체시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준에서 보면 초등학교 3,4학년수준도 안 됩니다.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실까요?
처…ㄹ… 썩, 처…ㄹ… 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 썩, 처…ㄹ… 썩, 척, 튜르릉, 꽉.
―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1연
어때요? 이 정도는 여러분들도 하루 저녁에 열 편은 쓸 수 있겠지요? 그런데 상당수의 문학도들은 처마 밑의 고드름을 아이스케이크처럼 따먹던 시절의 작품을 기준 삼아 쓰고 자기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사적 가치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학사 책을 넘기면서 시대별로 거론되는 시인들의 작품 목록을 뽑아 차례대로 읽으면서 시대와 시인에 따라 작품들이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알아봐야 합니다. 과거의 것이든 현대의 것이든 주목을 받는 작품들은 표현 방식만 달리할 뿐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왔으며, 진행 방향을 알지 못하고는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에는 우리와 경쟁할 이 시대에 주목받는 시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작품만 읽다보면 그 사람의 아류(亞流)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많은 사람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들의 장점을 찾아내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자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세 사람을 만나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반드시 내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라는. 그러나 저는 세 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도적놈을 보면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착한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착해져야지 하고 다짐하고, 미남이나 미인을 만나면 나는 비록 못생겼지만 내 체격에 맞는 옷이라도 입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방식 말입니다. 한 사람만 스승으로 삼으면 소성(小成)하고, 세 사람 모두를 삼으면 대성(大成)하고, 세 사람 모두를 부정하면 반드시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품들을 어디서 구해 읽느냐구요? 그야 문예지를 보면 되지요. 하지만 문예지는 편집자에 따라 게재하는 작품들의 경향이 다르니 적어도 두세 종류는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해에 뽑힌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 모음집이나 문학상 수상 작품집들을 구해 읽고요.
이제 한 가지만 질문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합시다. 당신은 왜 시를 쓰려고 합니까? 앞에서 내가 이야기한 것들만 지키려 해도 꽤 힘들텐데. 그리고 꼭 쓰시겠습니까? 만일 자신이 없으면 예서 이 책을 덮고, 그래도 쓰려는 분은 이 책의 각 장의 말미에 <우리의 할 일>이라는 과제를 꼬박꼬박 해보세요. 한 석 달만 그렇게 하면 문단에 나설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자아, 그럼 여러분들이 할 일을 제시합니다. 이를 해결한 분들만 ‘대가(大家)가 되기 위해’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
○ 문학사 책을 참고하면서 꼭 읽어야할 작품 목록을 뽑아 시작 노트에 적고 독서 계획을 세우십시오.
○ 세 개의 문예지를 선정하고, 이 달의 우수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읽은 다음 소감을 써보십시오.
<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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