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시 한 편 읽기 10 - 사월에 걸려온/정일근>
사월에 걸려온 전화/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시와시학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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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시내/이대흠
그 가시내 무척 예뻤네
솟기 시작한 젖가슴에 내 가슴 동동거렸지
십 년 넘도록 말 한마디 못했네
만나면 내 먼저 고개 돌리고
몰래 쓴 편지는 달을 향해 쌓여졌네
내 비록 고무줄 툭툭 끊어 놓았지만
그 가시내 눈만 보면 토끼처럼 달아났네
비 오는 날에도 햇살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따가웠을까
중학 시절 풀빵 보면 그 가시내
오동통한 보올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물 오른 버들가지
발자욱 소리에도 몰래 혼자 떨었다네
너무 오래 좋아하면 그 사람 멀어지네
그 가시내 무척 이뻤네
졸업하고 헤어졌네
그뿐이었네
―시집 『상처가 나를 살린다』(현대문학북스.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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