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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46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이승하>
당신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위암 말기에 거동을 못하실 때도 옆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핑계로 손발 한번 씻겨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다면 손발을 씻겨드리고 시 속의 화자처럼 손발톱도 깎아드리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저도 한번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살아만 계신다면...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 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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