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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박형진
마당 앞에 풀이나 뽑느라
아무것도 못 했어
거울 앞에 서면
웬 낯선 사내
오십 넘겼지 아마?
―시집『콩밭에서』(보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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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제목으로 쓰여진 시가 참으로 많다.
이미란, 정희성, 박두진. 박용래, 한하운, 이수익, 김초혜, 고은, 최금녀, 신현림, 김현승, 유안진, 임영조, 노천명, 공광규, 마종기, 김상미, 황성희, 박지우, 김언 시인 등…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 신인 같은 무명의 시인부터 원로 중견 시인까지 실로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자화상의 시를 썼다.
많은 자화상 시 중에 비교적 짧은 박형진 시인의 자화상 시 한 편을 본다. 길지 않은 시에 일생의 책 양편을 펼쳐놓은 듯하다. 백세 시대에 오십이면 청춘인 것 같지만 몸도 기력도 쇠해지는 시기, 생애 절정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 밖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시인에게 세태의 성공이나 물질은 먼 얘기, 어느 날 오십 고개를 넘어 문득 들여다 본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마당의 풀이나 뽑으며 아무 것도 못 하시었다는데 자괴감처럼 독백하지만 왜 자부심으로 들릴까. 시를 쓰는 일이 마당의 풀을 뽑는 것만큼 숭고하지 않을까 자위하며 위안 삼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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