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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1박12일' 텅 빈 학교에 갇힌 야간 당직기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10. 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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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1박12일' 텅 빈 학교에 갇힌 야간 당직기사

김봉구 입력 2017.10.07. 09:31 수정 2017.10.07. 11:20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만난 수도권 소재 학교의 당직기사. 최장 11박12일 근무를 해야 한다.

3일 간의 추석 연휴에 대체 공휴일과 임시 공휴일, 한글날, 두 차례 주말까지 더해진 열흘 동안의 황금 연휴. 하지만 모두에게 쉬는 날은 아니다. 연휴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최장 11박12일을 집에도 가지 못하고 견뎌내야 하는 이들도 있다.

통상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익일 오전 8시30분에 퇴근하는 학교 야간 당직기사가 그들이다. 하루 16시간씩 근무하는 평일은 그나마 낫다. 주말이나 휴일은 더하다. 주간에도 교대 없이 근무해야 해 며칠이고 학교를 홀로 지켜야 한다. 올해 추석 연휴는 그 절정이다. ‘학교 감옥’이라는 말이 맞았다.

연휴를 앞두고 만난 수도권 소재 학교의 당직기사 나학주 씨(익명·사진)에게 그 얘기부터 꺼냈다. “학교가 감옥 같으시겠어요.” 그런데 예상 밖 답변이 튀어나왔다. “학교를 감옥으로 여긴 적은 없어요.” 나 씨는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면서 학교를 지켜왔다”고 했다.

60대 초중반부터 학교 당직기사로 근무해온 그는 이제 80줄에 들어섰다. 20년 가까이 명절에 쉬는 건 꿈도 못 꿨다. 가족이 먹거리와 갈아입을 옷을 들고 학교 숙직실에 들르는 것으로 명절 만남을 대신하는 풍경이 익숙해져버렸다.

대신 세월만큼 주인의식이 자리 잡았다. 근무하는 학교가 공립이라 나 씨는 누구보다도 이 학교에 오래 있었다. 직원, 교사, 교장까지 갈려도 그는 남았다. 용역업체와 매번 계약을 경신해가면서다. 학교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발언’하려면 이름을 숨겨야 하는 역설이 거기에 숨어있다.

“학교 감옥이라는 얘기가 왜 나오는 줄 알아요? 워낙 일은 힘들고 돈은 짜니까 쌓인 불만이 터진 겁니다. 명절에 못 쉬는 거, 그러려니 해요.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합니다. ‘언제 열흘이 다 가나’ 그렇게 일일이 날짜 세면서 이 일 못해요. 그러면 적어도 인정이라도 해줘야지요.”

한 달에 하루 이틀 쉬는 나 씨가 받는 월급은 150만 원이 채 안 된다. 계약서상으로는 190만 원 가량인데 퇴직 적립금을 떼고 업체 몫 등을 제한 실수령액이 그 정도다. 업체가 하루 16시간 근무를 대부분 자는 시간, 쉬는 시간 등으로 간주해 6~7시간 근무로 치는 탓이다.

대부분 70~80대 고령인 당직기사가 몸이 안 좋아 쉬기라도 하면 다시 일당 5만 원씩 빠진다. 그 과정에 몇몇 편법과 후려치기가 있다는 걸 명확히 알진 못해도 얼추 짐작은 하지만 ‘을(乙)’인 당직기사는 항의조차 하기 어렵다.

연휴 기간 내내 근무해야 하는 학교 당직기사가 달력을 쳐다보고 있다.


“방과 후 저녁 5시쯤 문 잠갔는지 순찰 한 차례 돌고 밤 9~10시쯤 한두 번, 아침 5~6시쯤 또 한 번, 서너 차례 순찰을 돌아요. 밤에는 순찰 안 도니까 쉬고 자고 하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안 그래요.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학교 담 넘어와 술판 벌이는 건 비일비재해요. CC(폐쇄회로)TV에 뭔가 잡히면 또 나가봐야죠. 경찰서에 학생 붙들려 있으면 가서 데려온 일도 많고요. 경비업체 경보가 오작동한 적도 여러 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일일이 근무로 쳐주지도 않지요. 혹시 무슨 사고가 생겨도 경비업체에서는 바로 못 와요. 최소 10분은 걸립니다. 불이라도 나 봐요. 10분 새 상황 끝이잖아요. 하루도 편한 옷차림으로 자본 적이 없습니다. 손전등에 방망이, 호신용 스프레이까지 갖다놓고 10분 대기조로 자는 거예요. 집에서처럼 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말문이 터지자 그는 학교에 난 불을 온 몸으로 막았던 일화부터 시작해 당직기사의 현실을 줄줄 읊었다. 그렇게 일하는데 수당도 못 받느냐고 묻자 “일당도 제대로 안 주는데 수당을 줘요?”라며 격앙된 답변이 돌아왔다.

나 씨의 화를 더욱 돋우는 대목은 일하는 곳이 다름 아닌 ‘학교’라는 점이다. 보통 오후 4시경 퇴근하는 정규직 교사들이 한 시간이라도 초과 근무하면 꼬박꼬박 수당을 챙기는 모습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명색이 학교이고 교육자인데 나 같은 사람은 수당이나 제대로 받는지 관심 없어요. 그뿐입니까. 교장이 업체와 계약할 땐 최저가 입찰을 합니다. 업체가 어디서 몫을 챙기겠어요. 빤하잖아요. 우리 월급에서 그만큼 빠지는 거죠. 이게 기막힌 거예요. 교육기관이 이렇다는 게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앞서 학교 당직기사 직종이 포함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는 처우 개선과 별개로 연휴 기간 △당직기사에 특별 휴가를 줄 것 △대체 근로자를 배치할 것 △교육청이 관련 예산을 책임질 것 등을 주장했다. 과한 요구는 아닌 듯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쥐꼬리 월급에 연휴 10일 동안 학교 안 감옥이라니…” 학비노조 관계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올 추석 연휴에도 당직기사들은 길게는 11박12일간 텅 빈 학교를 홀로 지켜야 했다. 어느새 끝이 보이는 연휴를 아쉬워하는 지금(7일), 그들에게는 여전히 사흘 간의 종일 근무가 남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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