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5)
詩語
1. 詩語가 가진 뜻
시는 언어로 표현된 예술입니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언어로 표출되어야만 비로소 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서는 시적 기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미지가 언어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에 언어는 시의 출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의 언어는 일상어를 사용하되 일상어가 가지는 의미의 폭을 넘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의 새로운 의미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말의 발굴의 의미는 이를 두고 한 말이 될 것입니다.
2. 시어의 현대적 의미
현대적 의미의 시어는 형식상으로는 시어와 일상어의 구분은 없지만 시어와 일상어는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분하여 사용된다는 것은 일상어를 사용하되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일상어와는 달리 씌여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의 전달매체로서의 언어는 산업의 발달로 언어 의미망의 영역이 무한히 넓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시어도 비속어와 더불어 전문 과학언어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가 시일 수 있는 요건을 언어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시어에 대한 논의는 한층 복잡한 양상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먼저 시어의 개념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고전적 의미의 시어/ 일상언어와는 다른 언어입니다. 이 때 시의 언어는 인위적이며 미적입니다. 부드럽고 고상한 언어이며 귀족적이고 취사선택된 언어입니다. 여기에는 천박하고 비천한 언어는 제외 됩니다.
2) 근대적 의미의 시어/ 1800년 워즈워드의 「서정민요집」 재판 서문에서 워즈워드는 「본질적으로 산문의 언어와 다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물음은 고전주의 문학이론에 반동을 제기한 것이며 곧 낭만주의적 이념으로 수렴되는 물음입니다. 워즈워드에 의하면 시어는 인간의 정서를 전달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시어가 된다는 주장을 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어는 자연적 언어이며,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3) 현대적 의미의 시어/ 코울릿지는 워즈워드의 견해에 반대하며 시어에 대하여 일상적인 언어를 쓰되 사용하는 방법을 일상적인 언어 사용과는 다르게 사용한 언어라고 규정합니다. 시인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일상어가 시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시어이고 시어가 아닌 지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시어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로서 씌여진 언어가 반드시 시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표현을 획득한 언어가 시어가 되는 것입니다.
일상어를 가지고 시의 형식을 빌어 행 갈음과 연 구분을 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시의 요건은 외형적인 모습에서가 아니라 의미에서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0 0, 차렷, 헤쳐모엿 !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들로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박남철 <독자놈들 길들이기> 전문
위 시는 언어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시가 가지고 있는 기본 틀을 부수어 버린 작품입니다. 기존의 틀을 파괴해 버린 의미에서 이름 붙여 해체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군 훈련소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독자와 시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자 하는 시인은 욕설과 파라독스를 사용하여 시의 형태까지 해체해 버린 것입니다. 이 시는 자유분방함에서 전통적인 시의 미덕으로 여기고 있는 절제미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시적 표현을 얻고 있는지는 의문시되고 있으나 자유로운 시정신에 입각한 의도성에 의해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작품입니다.
3. 언어의 시적 기능
시에서 먼저 언어를 사용할 때는 필연성과 우연성이라는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필연성은 반드시 논리를 수반하게 되고, 그러니까 지은이의 의도에 의해 사용되어진 언어를 말합니다. 시인의 내부 질서에 의해 구조되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우연성은 언어의 충돌에 의해 야기되는 공간이 예술적인 의미망으로 구축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앞의 경우는 시인의 의도에 의해 언어가 취사선택 되는 경우이며 뒤의 경우는 시인의 의식에 투영된 언어가 돌출되어 나타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필연성과 우연성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적 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작품에서 필연성을 더 중시하게 되고 그러나 우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한사람의 책임 있는 시인으로서 우연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필연성에 의해 언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성이 작품의 의미를 변질시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연성은 그 작품을 참신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새로운 언어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를 창조하는 역할도 해야한다는 뜻이 바로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시가 언어의 무게에 깊이 빠져든 작품은 자칫하면 말(언어)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에 의해 의미가 닫히는 (한정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시를 써서 발표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공감대를 넓혀 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공감대란 사회의 한 약속―말(언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말이 가진 기호가 전달됨에 있어 시인과 독자 사이의 일치감에 필요한 것입니다.
「언어는 도구이다」라고 했을 때 시의 의미와 언어와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도구란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시에서 언어는 시적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릇이며 동시에 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의미와 언어가 동일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품에 쓸수 있는 언어의 외형적인 기법으로 반복, 중첩, 연상, 생략, 축약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종종 생략과 축약으로 시적 의미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의 결말을 확연하게 드러내지 않고 생략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상력의 공간이기보다는 생략된 말의 공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독자들의 상상력에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되지만 실상은 상상력의 공간을 차단하는 것이 됩니다. 시의 상상력은 언어의 의미에 내포된 공간의 크기에 의해 주어진다고 보며 언어 외적으로 주어진 공간은 생략된 모습을 단정 지워 주고 있기에 자유롭게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시적 언어는 코울릿지에 의하면 「보편적이며 상상적이고 시적 언어가 노리는 것은 시가 표현해야 할 내용의 문제이며, 언어 그 자체가 야기하는 미적 쾌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적 쾌락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하면서 말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의미 또는 일정한 의미만을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어는 그러한 언어의미의 한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하면서 언어를 확장해 가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의 원소로서 기능을 가진 시어는 낱말 개개로 분리시키면 우리는 일상어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축소되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언어가 시의 어느 한 부분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 그 언어는 훌륭한 시어가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좋은 시는 시어들이 아름다운 관계를 설정하여 제자리에 놓여졌을 때 가능하다는 결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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