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3)
시의 틀
시는 한마디로 「시인의 내면에 형성되는 세계를 언어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시적 형상화라는 표현에 의해 독자와 교통하는 의미이다」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시의 정의는 시인마다 각기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여러 의미로 구축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구름 잡는 식의 정의가 되다보니 시란 어려운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의 정의는 한마디로 말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름대로의 시론을 정립해 나가면서 시의 세계를 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시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시론을 만들어 나간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시를 이해하는 측면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태와 의미입니다. 형태는 겉모습으로 드러난 모양을 뜻합니다. 운문이니 이미지이니 표현과 같은 말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법칙이나 달리 정해진 규칙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면 이를 정형시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러나 일정한 제약 없이 시인의 내면적인 운율에 의해 표출되고 있는 형태일 때는 자유시라 이름 붙입니다.
정형시의 대표적인 것으로 서양의 소네트, 발라드, 일본의 하이꾸, 중국의 한시와 우리 민족 고유의 형식으로 발전해 온 시조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시조는 현대화에 의해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기본적 형태는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본적인 틀에 얽매임으로서 더 자유로운 예술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양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조는 외형적인 억압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검 얽은 박색이라 말 할 이 전혀 없어
임 올까 바라보니 달빛 더욱 적막인데
내 없이 끓은 애 曳履聲만 높아지네
독자의 시조 <박색이라 하여도> 1 수
위 시조는 의미에서 우러나오는 리듬을 자연스럽게 갖지 못하고 숫자적으로 정형의 틀에 맞추려다 보니 다소 억지스러움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장에서도 ‘예리성’이라는 한자말을 사용하여 옛 시조의 형태를 흉내 내고 있어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조는 형태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을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내는 작품이야말로 올바른 전달과 더불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초장과 중장을 자유시의 형태로 바꾸어 보면 더 쉽게 전달 될 수 있음을 알 것입니다.
검은빛으로 얽은 얼굴이라
말 할 이 한사람도 없지만
님 올까 바라보니
적막 속에 달빛만 더욱 차갑네
같은 의미일지라도 담는 그릇에 따라 전달될 수 있는 의미는 다르게 마련입니다. 어떤 형태로 표현해 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상상력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다음에 기성 시조시인의 작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손 놓을 때가 아니다
아직은 숨죽이며
목숨 줄 감아쥐고
멈춘 듯 빠른 회전을
지켜 서 있을 뿐이다.
정표년의 <팽이>전문
위 작품은 팽이를 대상으로 하여 분주히 움직여야 할 우리 삶을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시조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충분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훌륭한 세계를 구축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형식이 내용과 일치되어 형식 때문에 의미 전달이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결국 형식(틀)은 의미를 가두는 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더욱 견고하게 해 주는 것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이 의미를 누르고 불거질 때는 그 형식은 잘못된 것이므로 부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형시가 일정한 틀에 자유로운 상상력을 담아 더 큰 상상력의 자유를 부여하는 형태라면 자유시는 시인의 의도를 어떤 형식으로라도 표출해 낼 수 있도록 최대한의 공간을 제공해 주는 양식입니다. 그러기에 현재 쓰여지고 있는 시들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표출해 내고 있는 자유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시가 가지고 있는 기본 성격과도 합치된다 할 수 있습니다.
우선 투고된 작품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할까 합니다.
(가) 눈을 감으면 (나) 눈을 감으면
낮은 함성으로 낮은 함성으로 다가오는
다가오는 뽀얀 안개 뽀얀 안개
누구일까 누구일까 그는
그는 기다림도 거부한
눈빛
기다림도 거부한
눈빛 차라리
건너지 못할 강 끝자락에 서서
차라리
건너지 못할 붉은 저항의 몸짓
강 끝자락에 서서 서녘
노을을 바라보네.
붉은
저항의 몸짓
서녘
노을을 바라보네.
독자 신미선의 시 <그리움> 전문
위 시는 그리움을 노을에 비유하여 형상화시키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의미상으로는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여 간결한 이미지로 나타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을은 부드럽게 표현되는데 반하여 이 시는 강렬하게 표현하여 차별화에 성공한 작품입니다. 뽀얀 안개와 눈빛, 그리고 저항의 몸짓 사이에 공간의 폭이 넓어 충분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는 투고된 형태이며 (나)는 필자의 임의대로 행 구분을 다시 해 본 것입니다. 자유시의 행 갈음은 행과 행 사이의 필연성에 의해 나누는 것이 적절하나 위 작품에서는 행 갈음에 개연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시의 빈번한 행 갈음은 호흡이 자주 끊어지고 시상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아 지은이의 의도가 강하게 묻어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자유시의 모습은 시인의 의도에 의해 그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의미에 알맞는 형식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위 작품을 여러 각도로 모양을 달리해 어느 형태가 가장 의미 전달에 효용성이 높은지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유시는 때로는 산문의 형태로 구축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분은 산문시를 독립된 모양으로 구분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형식의 자유로움에 비추어 자유시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다음 독자 투고된 산문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갈 길에 깔린 낙엽이 울어 내 맘 속 속에 파고들면 어이 하려나 햇살이 붉어진 날 노오란 물 머금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휭한 날 들녘 먼 곳에 어둠이 다가 오면 나는 언덕에 서서 생각하리라
얼음장 속으로 물소리 들리는 날
우주는 시퍼런 멍투성이로 뿌연 안개비 재켜 내고, 실버들 가지에 강아지 피면 잔디는 파랗게 잎이 되려니 꽃샘바람 앞다퉈 기세 떨면 살갗 에인 날
봄을 맞이하리라
독자의 시 <봄소리>전문
위 시는 산문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행 갈음을 하여도 무방한 작품입니다. 어느 정도 시적인 표현을 얻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1연에서 ‘낙엽이 울어’, ‘햇살 붉어진 날’ ‘휭한 들녘 먼 곳’ 과 같은 말들은 가을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제목인 <봄 소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고 1연과 2연의 이미지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 갈음을 하여 표현할 것인지 산문시로 표현할 것인지는 보다나은 전달을 위한 최선의 형태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산문을 행 갈음하여 자유시의 모습을 띄게 한다든가 자유시의 행 구분을 없애어 산문의 형태로 만들었다 하여도 결국 시가 가진 기본 틀은 시적인 표현에 있다할 것입니다.
자유시든 산문시든, 그리고 정형시든 시는 어떠한 틀에 담겨지더라도 중요한 것은 결국 시적 표현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적 표현에 대하여 다음 호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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