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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천명관·손아람 ‘문단 권력’ 날선 비판 “출판사·언론·대학의 카르텔이 ‘문피아’돼 작가 길들이고 지배”
▲ 문단 주인은 작가 아닌 선생님
그 선생님들이 문학상도 장악
작가의 상상력·취향 빼앗아
- 천명관
▲ 문학상·문예지로 작가들 장악
내게 “공모전 내보라” 제안도
‘자동계약 조건’ 등 없어져야
- 손아람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점점 더 대학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문창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 거라는 얘기들을 한다.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물밑에서 문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 처음엔 나도 다들 외로우시니까 잔칫상에 와서 한두 숟가락 떠 드시는 거라고 좋게 생각했다. 나아가 문학을 사랑하는 충정이라고까지 이해했다. 하지만 한두 숟가락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학의 형질을 바꿔놓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문학을 고립무원의 산중으로 끌고 들어가 작가와 독자들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놓고 있다.”(천명관, ‘악스트’ 창간호 인터뷰에서)
<고래> <고령화 가족>을 쓴 소설가 천명관씨(51)와 <소수의견> <디마이너스>의 손아람씨(35)가 이른바 ‘문단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천씨는 한국 문학이 외면받고 문학주의의 성채 안으로 고립된 데는 ‘대학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문단 권력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그는 이 같은 견해를 3일 창간호가 배포되는 소설전문잡지 ‘악스트’ 인터뷰에서 상세히 밝혔다. 천씨는 최근 문단 권력의 한 축으로 비판받은 출판사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데뷔작 <고래>부터 대다수의 책을 내온 작가다.
천씨는 문단 권력을 ‘문단 마피아’라고 지칭하며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라고 밝혔다. 또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 (…)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신경숙씨 표절 논란 사태가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악스트’ 편집위원인 소설가 정용준씨가 진행했다. 천씨는 최근 표절 논란에서 이어진 논의에 훨씬 앞서 한국 문학과 문단 권력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악스트’ 인터뷰에서 천씨는 “작가들은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며 “문단생활을 한다는 건 내내,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심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심사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작가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요즘 신인들은 어떻게 써야 등단을 하고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삐져나오는 송곳 하나 없다는 게 기이할 정도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
천씨는 ‘같은 선생님들’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문학성을 평가하는 문학상 제도도 비판했다.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보단 단편이, 스토리보단 문장이, 서사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 문학상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일이라 (문학이) 처신이 중요한 예술이라면 그리고 예술가의 최종 목표가 대학의 교수 자리라면 그것이 세상에 나가 뭘 할 수 있을까.”
천씨는 한국 문단 시스템이 기획상품처럼 만들어내는 작가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창과나 국문과를 나와 등단하고, 평론가들이 심심치 않게 이 시대의 징후를 포착할 만한 단서를 떡밥처럼 던져준다. 문단이 주목하기 시작하면 주요 문예지와 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다. 대학 강사도 병행하다가 주요 문학상을 타면서 마흔 전후에 대학교수로 부임한다.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이후 이런저런 심사에 얼굴을 내밀고 제자를 키우고 후배를 챙기면서 존경받는 문단 원로로 늙어간다. 그런데 문득 그의 대표작이 뭐지? 라고 생각하면 딱히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날 손아람씨도 경향신문에 보낸 e메일에서 “문학동네를 위시한 대형 출판사들이 ‘공모문학상’과 ‘문예지’라는 두 무기를 휘둘러 작가들을 길들여왔다”고 밝혔다. 책을 내자며 만난 문학동네 마케팅 팀장으로부터 계약 제안이 아니라 ‘공모전에 원고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던 일, 창비에서 청탁을 받고 문단 내 평론가 계파 갈등을 다룬 소설을 냈더니 편집위원들이 픽션을 두고 ‘사실 왜곡’이라며 반려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손씨는 최근 1~2년간 창비와 문학동네 계간지가 다룬 작가·작품과 해당 출판사 출간 작품 등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분석해 꼬집었다. 그는 “이렇게 설정된 ‘문학적 논의영역’ 바깥에 위치한 작가·작품의 비평은 평단에서 소외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잡음이 되기 쉽고 심지어 지면 자체를 얻기도 어렵다”며 “문학상과 문예지의 막강한 권위를 앞세워,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사실상 문학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영화사가 영화잡지를 인수해 평론가들에게 돈을 주고 자사 영화 위주의 평론을 쓰게 하는 것’ ‘대기업이 소유한 언론사에 돈을 주고 자사 제품에 대한 기사만 싣게 하는 것’에 빗댔다.
손씨는 “문예지에서 평론가에게 특정 작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청탁하는 행위를 근절하고 이러한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출판사 공모문학상을 받아도 다른 소형 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 있도록 자동계약 조건을 없애고, 출판사가 자사의 책을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없게 하는 규범이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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