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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 강의 (15) - 상징은 무엇인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3. 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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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 강의 15

                  상징은 무엇인가




앞에서 우리는 이미저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주로 이미저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본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상징이 갖는 의미를 분석해 보고 시에서 상징이 어떻게 쓰여지는 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징이라는 말의 어원은 희랍어의 「짜맞추다 symballein」라는 동사형에서 명사형을 가져와 「표시 symbolo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문학의 경우 상징은 가시의 세계, 곧 물질세계가 연상의 힘에 의하여 불가시의 세계, 정신의 세계와 일치하게 되는 표현의 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상은 두 사물이 상상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는 정신활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상징이 내포하는 의미로서는 한마디로 심상(image)과 관념(idea)의 결합이며 관념은 심상이 암시적으로 환기하는 것이 됩니다.


   산 아래 핀 꽃을 꺾었을 때

   하얀 피가 흘러 내렸다

   나는 깜짝 놀라 꽃을 보았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몰라주었던 이름

   오랑캐꽃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영환의 「오랑캐꽃」 전문


오랑캐꽃은 제비꽃의 다른 이름입니다. 꽃을 꺾었는데 피가 흐를 수 있을까. 여기에서 ‘하얀 피’가 상징하는 것은 순결한 생명이며 그것이 가진 전설까지도 내포하게 됩니다.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오랑캐꽃에 관한 전설입니다. 오랑캐가 이 땅을 침범해 왔을 때 산과 들에 이 꽃이 너무 많이 피었고, 사람들은 오랑캐가 죽어서 이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도 돌아가지 못하는 영혼이 꽃이 되어 남아 있는 슬픈 전설을 안고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하얀 피’는 바로 그러한 생명이 꺾이는데 대한 아픔이 상징되어 있는 말입니다.

상징을 비유적 측면에서 논의한다면 사상적 비유 즉 직유, 은유, 환유, 제유 따위와 유사한 개념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상징은 사상적 비유만은 아닙니다. 상징은 비상사성 혹은 비유사성을 터널로 한 두 사물의 결합입니다. 확장된 은유 혹은 반복적 은유라고 부를 수 있으며 동시에 한편으로는 의사주체 pseudo-subjec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밤의 세계가 아무리 캄캄하고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절망뿐이라 해도


  희망을 머금고 솟아오르는

  저 힘찬 태양 아래서는

  무릎을 꿇고 땅 속으로 숨는다


  마음이 너무 쓰라려

  어둠과 추위에 떠는 친구여

  시간이 지나면 따스한 햇살이

  그대 언 심장을 녹일지니


위 작품은 독자가 쓴 ‘희망’이라는 작품입니다. 마음에 그려지는 심상을 있는 그대로 관념으로 드러낸 글이기에 산문의 범주에 넣는 것이 합당하다 봅니다. 그리고 이 시는 벌써 제목에서부터 산문적인 모습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그런 제목입니다. 이런 관념적인 언어는 사람들마다 느끼는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시인이 전달하고자하는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 될 수가 없는 말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느끼는 희망과 ‘을’이라는 사림이 느끼는 그것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물이 될 때 그 사물을 그리는 영상은 누구에게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물을 가지고 마음속에 그려지는 관념을 드러내어 상징으로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 시는 시가 가질 수 있는 비유와 상징, 이미저리가 없이 설명적이기 때문에 좋은 시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시를 확장적 은유 또는 반복적 은유로 상징의 체계로 끌어들인다면 훨씬 역동성을 가진 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알기 쉽도록 수정을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밤은

  어둠으로 쌓은 절벽이다

  솟아오르는 태양 아래서는

  무릎을 꿇고 숨는다

  지금은 그대

  벼랑에 매달려 떨고 있지만

  그대 가슴에

  태양이 솟을 때 그대는

  밝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기교를 살려 고쳐 보았을 때 다가오는 느낌은 설명적이기보다는 하나의 세계를 갖는 유기체로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구축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절벽>은 꽉 막힌 세계, 희망이 없는 절망뿐인 세계,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하게 되는 말입니다. ‘밤’과 ‘절벽’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상징은 비상사성 반유사성을 통로로 하여 두 사물을 결합시키는 형태입니다. 거기에 ‘태양’이나 ‘밝은 하늘’과 같은 말은 다른 의미를 가진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가 만들어낸

  살아있는 모빌인가

  싱그러운 오월햇살

  보라에 눈부시다

  그 아래 노는 아이

  보라향기 물들겠네


시 ‘등꽃’이라는 독자의 시입니다. 위 시는 상징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 통로가 불완전하여 의미의 연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등꽃=모빌’이라는 비유가 그것인데 문학적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거기에 대한 이미지 제공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등꽃의 색깔인 보라색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그것을 상징성을 가진 말로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서 안이한 발상에 그치고 만 작품입니다. 치열성을 갖기 위해서도 상징적인 기법을 차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시에서 시의 의미를 더욱 넓혀 주는 상징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과 관념을 유사성을 통하지 않고 교통시킬 수 있는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언어의 기호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상징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카씨러의 말을 새겨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신화, 예술, 역사, 과학 등은 상징형식의 세계를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상징은 가설적 세계이며 이 가설적 세계의 구축이야말로 모든 인간의 꿈이 개화하는 장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상징은 인간성의 실마리이며 모든 인간은 상징적 행위에 의하여 인간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의 빛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다. 모든 마술의 열쇠가 인간의 꿈과 결합되듯이, 상징의 개념 역시 이러한 인간의 꿈과 오지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시인은 일상적이거나 인습적인 상징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상징을 만들어야 합니다. 상징은 끝없는 향기와 색채와 소리의 미묘함을 이미지나 음악성에 의해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암시의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인 말라르메, 랭보, 베를레느, 발레리 등은 한결같이 추상적인 관념을 버리고 암시의 방법에 의하여 깊은 정신의 세계까지 들어가 인간이 다달을 수 있는 극한의 심령 상태를 밝혀내었던 것입니다.